이른 잠을 잃었다. 이른 새벽을 잃었다. 일어나라 차갑게 재촉하는 여명을 잃었다.
늦잠이 잃게 한 그들의 후폭풍에 맞선다.
세상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체온도 같이 올라가고 눈의 빛도 더 뜨거워진다. 늦잠은 나를 더 뜨겁게 한다. 세상과 비례하고 있는 온도에 익숙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이른 잠을 포기한 건 이틀인데 꾸역꾸역 잡고 있었던 명민함은 저만치 일주일 분만큼 멀어져 간다. 신선하게 리필되면 돌아오겠다는 듯 그림자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기운 없이 내 몸통을 올려다본다.
걷히지 않은 어제의 독성 찌꺼기 속에서 여전히 발을 빼내지 못한 듯한 몽롱함 속에 잃은 것들의 배웅을 받는다.
기꺼이 배웅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고 마중하는 것들을 향해 걸어야지.
오늘은 철학흥신소 주인장인 황진규 작가의 북토크에 가는 날이다. 그런 기대가 제일 먼저 나를 마중한다.
주섬주섬 세수를 하고 자동차 키를 챙겼다.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게 기쁘다. 시동을 걸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루틴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닫는다. 다시 거슬러 들어가 예쁜 초록색을 삼키고 블랙커피를 만들고 노트를 가지고 나왔다.
초현실의 공기 속을 헤매다 품을 크게 벌리고 있던 고속도로 입구로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은 나무가 빽빽한 그 길이 나를 마중하러 나오나 보다.
늦잠으로 얻은 도로 정체를 즐긴다. 라디오 클래식 에프엠에 마음을 얹는다. 익숙한 차이콥스키에 안도한다.
양쪽의 빽빽한 초록 나무로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트인다. 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바삐 지나가며 다 잘될 거야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고속도로의 메마른 속도와 따가운 태양빛을 피해, 오늘 나를 마중하는 것들에 감사한다.
이틀간 자정이 다 되어 모아둔 색깔들, 흑백과 녹색 빛을 배달하는 아침이다. 그의 파랑으로 간다. 내가 꿈꾸는 이상 세계가 이상한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세상에 색깔이 없다면 그건 투명일까 흑백일까. 세상이 한 개의 색깔로 이루어진다면 노랑이나 초록, 아니면 파랑이면 좋겠다.
질투 뒷 면의 빛을 모아 갈증 하는 노랑, 조화를 사랑하는 자연색 초록과 천천히 스며드는 독성을 품은 파랑에 매혹되어 아주 느리게 살고 싶다. 아주 천천히 순간을 떠나고 싶다.
늦잠으로 내가 잃은 것들의 배웅은 나를 다시 살게 하는 것들의 마중으로 나를 떠민다.
이렇게 오늘 또 하루가 오롯이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