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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02. 2024

언택트톡신

untactoxin, 영화 언택트톡의 '매우' 주관적 정의

contact에 un을 혼합하여 untact, 접촉하지 않아요, '비대면'입니다. talk, 말하는 것 합치는 Untactalk일거라 추측합니다. 언택트(untack)는 콩글리시(Konglish)니까 '비대면'으로 쓰라는 국립국어원의 권고에도 꾸준히 언택트를 즐겨 씁니다.


영화와 평론가의 분석을 묶은 상품을 '언택트톡(Untactalk) 영화'라 부르더군요. '비대면 영화분석'으로도 좋은데 어쩐지 우리 문화에서는 영어를 더 부드럽고 고상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사대주의죠.


제가 충격을 받았던 사대주의 영어 표현은 '문탠로드'입니다. 부산의 '달맞이 길'을 'Moon Tan Road'로 바꾼 걸 겁니다. 달을 마주 보며 아름답게 꿈을 꾸듯 어서 오라는 기다림 대신, 최소한으로 가린 몸으로 벌렁 드러누워 살을 태우는 태닝(tanning)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Moon(달) 아래 태운 살이 어둑어둑해질 겁니다.


아, 하려는 이야기가 이게 아닌데. 갑자기 연합되는 분노에 너무 뾰족해졌습니다. 본론으로 갑니다.




보고 싶은 영화의 프리미어(Premiere, 공식 공개 전 첫 상영)에 전문가 언택트톡이 붙었더군요. 보통 때는 10%도 차지 않았던 예술영화 상영관이 거의 다 차고 언택트톡만 한 시간이 넘습니다. 이게 뭘까?


예술영화에는 보통 포스터가 굿즈로 나오는데 상영 전 문의하니 엽서라고 하더군요. 엽서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오호! 했습니다. 상영 전에 받을 수 있냐 물으니 영화 끝나고 준답니다. 다른 곳에서는 상영 전에도 주던데 영화관마다 다른가 봅니다.


영화가 끝나고, '언. 택. 트. 톡!' 아아아, 이게 뭐 하는 건가요? 영화를 보고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초고속 꼼꼼 영화 해설기에 뇌를 다져 넣으라는 거예요? 영화평론가가 다소곳이 앉아 과시용 영화 용어를 써가며 아주 친절하게 막 본 영화의 주요 부분에 대해 해설해 주겠다 합니다!


저는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고 혼자서 생각하고 곱씹으며 영화를 제 것으로 만드는 간이 꽤 깁니다. 느릿느릿 즐기는 기쁨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는 제 영화 취향 상, 이 언택트톡은 저를 뒷걸음치게 만들었습니다.


5분을 꾸역꾸역 참다가 사람들의 몰입하는 분위기에 조용조용 기어 나왔어요. 두 볼을 부풀려 씩씩거리면서요. 골똘한 생각 과정들과 궁금해서 행동하게 하는 열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아! 오! 와! 아하! 그래! 어쩜! 역시! 이러다가 나오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머릿속을 정리하고 엽서를 받아 집에 가기로 합니다.


'언택트톡, ' 너를 나만의 주관으로 정의해 줄게. Untact에 talk이 아닌 toxin(독)을 합성해서 Untactoxin(언택트톡신)이라 부를 거야. 칭으로 Untactox(언택트톡스), 화 후 '언택트톡스'맞으세요. 뇌의 주름을 방지합니다!


엽서 받는 곳, 매니저와 한판 합니다. 언택트톡까지 끝나야 엽서를 준다네요. 영화 다 보고 나오래서 영화는 다 봤다니까요!


직원들은 친절한데, 매니저는 고압이네요. 직원들은 따뜻한데 매니저는 얼음입니다. 직원들은 전전긍긍인데 매니저는 AI예요.


선착순이라니 제일 앞 줄에 서서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직원들에겐 제가 진상이나 엽기 현상이 되었겠지요. 팽팽한 긴장에서 제가 손을 놓은 이유는 한 직원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다 보고 나오신 거니까 엽서를 그냥 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직원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매니저가 마침표를 찍습니다.


'언택트톡도 영화의 일부라서 그게 끝나야 영화를 다 본거야!'


언택트톡이 무슨 영화야, 나 같은 사람에겐 시간 낭비라고! 융통성, please~! 흑!


저는 1시간 10여분을 기다리면서 당당히 굿즈 배부 프런트 위에 스마트폰과 무선키보드를 세팅하고 글을 썼어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글쓰기가 있어서 얼마나 고맙던지요.


스탠딩 글쓰기도 나쁘지 않았고 간간이 매니저를 불러 한 Q&A 모순 덩어리를 메모하며 확인도 받았어요. 어떻게 제안을 해야 할지 고민 시작합니다.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마주하면 왜 엔돌핀이 솟을까요? 하하!


어떤 사람영화가 재상영인 경우 영화비를 모두 내고 보지 않고 굿즈를 고 싶니다. 그런 융통성이 영화를 꽤 보러 다니는 저 같은 관객에게는 감사할 일입니다.




그 집과 경계를 한, 담 너머 그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봤던 광경들, 다시 눈앞이 하얘지면서 가슴 철렁했습니다. 제발 머리카락 더미만은 나오지 않게 해 주세요. 가슴이 쿵쾅거리며 터질 것 같았습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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