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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l 20. 2024

하늘 고자질

물고기자리의 우울한 상상

우울한 시간, 권태스러운 날에는 물고기자리에 다다른다. 언제나 상상을 부르는 그 자리에서 물 밖으로 비상할 수 없는 물고기를 측은하게 여긴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도 지평선이나 수평선 따위는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물 안의 세상이 전부인 작은 물고기가 그녀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먼 옛날 로렐라이 언덕 아래의 검푸른 강을 배회하던 인어였다면 가끔 바위에 올라앉아 꼬리를 물에 담그고 생명을 수혈하며 수평선과 지평선을 천천히 바라보는 동안 더 큰 세상을 꿈꿀 수도 있었겠지. 거품을 선택한대도 괜찮아. 혼잣말의 표정이 마음속의 뜨거움을 눌렀다.


물이 닿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자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본다. 아-오-우- 아-오-우- 생명을 더 다오. 물속에서 버둥거리면서도 물이 닿지 않는 절망이 우울이다. 한껏 우울하고 잘 털어내야 한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다 했다. 두 마리의 놀란 물고기가 물에 뛰어드는 듯한 흐릿한 별자리라니 더 답답한 슬픔이 느껴졌다. 인간들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수호성과 상징색이 어쩌면 더 그녀에게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성과 초록을 더듬어 기억 속에 구겨 넣는다.


가스와 얼음으로 차 있다는 목성의 아름다운 띠들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십 대의 꿈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도 빠른 현기증의 삶이라면 방사능 가스로 가득한 그 신비한 두께는 그녀에게 독이 될 것이 확실했다.


정상과 비정상을 모두 죽인 후 정상이었던 세포들이 다시 살아올 거라는 희망을 놓으면 훅! 불은 꺼지는 거다. 세포가 타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 고통도 시한부겠지 위로한다. 독을 죽이는 통증을 참아내야 새로운 독이 기다리는 안전지대에 다다르는 거다.


그 독을 뚫고 내려가면 쉴 바다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가야지. 그녀는 물고기 자리니까. 초록의 숲을 지나 나무를 뚫고 저 아래 기다릴 시원한 물을 상상한다. 뜨겁지 않고 아프지 않고 어지럽지 않은 시원한 그 물로 돌아가게 되기를.


상상으로만 가능한 커다란 창문을 빠져나가 초록으로 흔들리는 들판에 선다. 하루의 대부분이 상상인 이런 날의 위안을 한껏 안는다. 초록이 바람을 재촉하고 바람은 구름을 흘려보낸다.


구름과 바람 그 경계 어딘가에 엉거주춤 서서 띄엄띄엄 말을 건넨다. 낯선 곳에서 나를 건저 내어 저 바다로 되돌려다오. 창문엔 바다와 멀디 먼 작은 하늘만 아득하다.  하늘에 투덜대본다.


오늘 하늘이 비를 내리면 그 물을 타고 돌아 시원한 바다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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