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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l 17. 2024

라스 폰 트리에

분열해체적 영화감독 [no 스포일러는 없다]

보이는  이해하고 담아 감성으로 펌프질 하는 장치가 삐걱거리는 거 같다. 더 정성 살아야지 한다.




영화 전 정보를 읽지 않는다. 영화 후 평론을 읽지 않는다. 감독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배우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관심 없다. 후기용 정보 찾기도 시들하다. 영화 한 편으로 인생 하나 새로 살러 가기로 했다.


라스 폰 트리에를 뽀개고 있다.

짙은 어둠을 뚫으며 봐야 하고

검거나 붉은 물을 휘적거리며 

머리와 심장이 덜덜 떨었다

살짝 돌아 찢긴 쾌감에 웃는다.


어둠 속의 댄서로 눈을 잃었다. 마음의 눈으로 하는 노래와 춤의 진지함에 목이 메어 엔딩크레디트가 끝나고도 한참을 엉엉 울었다. 빗자루 들고 정면에 서 있던 영화관 직원의 당황을 읽었다.


범죄의 요소로 죄를 들이켰다. 죄를 응징하는 사람은 범죄자의 삶으로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그 고통과 분열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에피데믹으로 앓아누웠다. 글 쓰는 작가의 아날로그 협동 플롯 작업이 숨구멍으로 다. 결말의 반전 호러를 잊을 수 없다.


유로 예매한 걸 취소했다. 한꺼번에 몰아치다 미칠 것 같다. 유로파, 백치들, 멜랑콜리아, 안티 크라이스트, 얼마나 나의 영혼을 벗겨낼지. 


영화 전 감독이 한 마디 한다. 감독이 사과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보통 이상으로 분열적이고 해체적이며 썩었다고 표현할 만큼 인간 본성을 흔들고 있다.


엄청난 무맥락 비맥락은 실낱같은 연결로 남겨두어야 전체를 이해하고 영화관에 끝까지 앉아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엔딩크레디트가 끝날 즈음 마음 정리를 하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감독의 흔들리는 손과 눈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남은 혼란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라야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적 거장으로 알려져 있는 감독이라 호기심이 컸다. 충격도 컸다. 남겨진 생각 꼭지도 많다. 진저리를 치며 헛웃음을 들이키며 봤으면서 여전히 몽롱한 매듭을 한 아름 안고 버리지 못하겠다.


생각하는 것과 보여주는 것과 말하는 것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흔히 산다. 잘도 산다.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의 결말들이 전율이다. 상상을 넘은 현실 속의 초현실이 적나라하다. 당황의 쓴웃음에 공감하면서 나 또한 저들 족속이구나 마음을 정한다. 괜찮다.


영화를 보며 세상 한편을 들여다본다. 영화에 살면서 내 사는 방식에 새로운 충격을 가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제대로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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