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양육 방식에도 스스로의 사랑을 찾고 삶의 방식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 소설 로그라인
갈망하던 것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낸 속삭임 같은 부추김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쓰고 싶다. 나를 쓰고 너를 쓰고 시간을 쓰고 공간도 공기도 색깔도 사람도 모두 농축해서 잘 담고 싶었다.
2023년 11월 20일 손가락에 난 깊은 상처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피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은 시급함을 전하는 것 같았다. 소설은 결국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앙금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그리고 어떤 필연의 중력으로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11월 21일 내 손가락 상처의 핏자국을 확대한 사진을 걸고 악마처럼 웃으며 소설의 첫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악!'이 그 시작이었다.
간간이 글을 읽으며 응원하고 공감하며 안타까워해주시는 작가님들의 댓글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두려움이 왔다. 깊은 감사와 두려움이 혼재된 소설 쓰기는 내 전체 인생을 통틀어 경험해보지 못한 전율로 나를 흔들었다.
3월 초, 모든 회차의 발행 후 첫 투고 준비를 위해 77개의 글을 발행취소글에 옮겨 두었다. 초고를 옮겨 가족들에게 제본한 소설을 안기며 피드백을 요청했다. 내 발행 글을 이미 꼼꼼하게 읽는 사람들이어서 전체적으로 후루룩 읽고 한 마디씩 해주기를 바랐다.
ST인 남편은 불친절한 글이라며 읽는 내내 시뻘건 볼펜으로 망치질을 했다. 맞춤법과 연결되는 이야기의 타당성에 시키지 않은 것까지 뒤적거려 내 분노를 샀다. 사실은 고마워해야 하는 거였음을 이제는 안다.
NF인 딸아이는 신중했다. 소설 속 심정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가슴 저려하며 때로는 같이 뜨거워했다. 조심스러운 피드백이 왔다. 다 읽고 나서는 펑펑 울며 톡을 해서 같이 가슴 아파했다. 잔잔해요.
정반대 성향의 두 사람에게 받은 피드백, 불친절하다와 잔잔하다, 거기에 프로 편집인의 피드백을 받아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도와주려는 분들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결국 내가 편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투고를 하면 결과가 나올 때 떨어지더라도 그에 대한 피드백을 줄거라 믿었기 때문에 투고 준비를 했다. 최근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상작에는 미사여구의 피드백이 붙고 떨어진 작품은 폐기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피드백에 많은 시간을 쏟는 나는 다른 세상을 내 세상인양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투고 준비를 하며 한 두 달쯤 읽지 않고 방치했다가 새롭게 다시 읽으며 수정할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다. 시점도 어렵고 사건들의 깊이를 재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 자극적으로 수위를 높일지 아니면 내 언어대로 두고 독자의 상상에 맡길지 하는 고민들은 수정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되었다.
내 상상 속에서 흠뻑 살았다. 내 소설 속에서 한번 더 살았다.
30초쯤 출간 작가가 되는 게 어떤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출간을 이뤄내고 홍보를 하며 뜨겁게 살아가는 다른 작가들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과정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혀갔다. 두 번의 투고가 나의 원고를 한번 더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에 만족한다.
몇 번을 읽어도 뜨거운 부분, 다시 읽으며 눈물 흘리게 되는 내가 쓴 나의 소설을 사랑한다. 내 소설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POD 출판에 대한 생각도 버렸다. POD로 나온 책을 주문해서 받아보니 표지 질감과 색감 처리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