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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l 29. 2024

비매품 소설

글쓰기 정체성

중성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양육 방식에도 스스로의 사랑을 찾고 삶의 방식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 소설 로그라인


갈망하던 것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낸 속삭임 같은 부추김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쓰고 싶다. 나를 쓰고 너를 쓰고 시간을 쓰고 공간도 공기도 색깔도 사람도 모두 농축해서 잘 담고 싶었다.

 

2023년 11월 20일 손가락에 난 깊은 상처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피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은 시급함을 전하는 것 같았다. 소설은 결국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앙금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그리고 어떤 필연의 중력으로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11월 21일 내 손가락 상처의 핏자국을 확대한 사진을 걸고 악마처럼 웃으며 소설의 첫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악!'이 그 시작이었다.


간간이 글을 읽으며 응원하고 공감하며 안타까워해주시는 작가님들의 댓글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두려움이 왔다. 깊은 감사와 두려움이 혼재된 소설 쓰기는 내 전체 인생을 통틀어 경험해보지 못한 전율로 나를 흔들었다.


3월 초, 모든 회차의 발행 후 첫 투고 준비를 위해 77개의 글을 발행취소글에 옮겨 두었다. 초고를 옮겨 가족들에게 제본한 소설을 안기며 피드백을 요청했다. 내 발행 글을 이미 꼼꼼하게 읽는 사람들이어서 전체적으로 후루룩 읽고 한 마디씩 해주기를 바랐다.


ST인 남편은 불친절한 글이라며 읽는 내내 시뻘건 볼펜으로 망치질을 했다. 맞춤법과 연결되는 이야기의 타당성에 시키지 않은 것까지 뒤적거려 내 분노를 샀다. 사실은 고마워해야 하는 거였음을 이제는 안다.


NF인 딸아이는 신중했다. 소설 속 심정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가슴 저려하며 때로는 같이 뜨거워했다. 조심스러운 피드백이 왔다. 다 읽고 나서는 펑펑 울며 톡을 해서 같이 가슴 아파했다. 잔잔해요.


정반대 성향의 두 사람에게 받은 피드백, 불친절하다와 잔잔하다, 거기에 프로 편집인의 피드백을 받아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도와주려는 분들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결국 내가 편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투고를 하면 결과가 나올 때 떨어지더라도 그에 대한 피드백을 줄거라 믿었기 때문에 투고 준비를 했다. 최근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상작에는 미사여구의 피드백이 붙고 떨어진 작품은 폐기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피드백에 많은 시간을 쏟는 나는 다른 세상을 내 세상인양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투고 준비를 하며 한 두 달쯤 읽지 않고 방치했다가 새롭게 다시 읽으며 수정할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다. 시점도 어렵고 사건들의 깊이를 재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 자극적으로 수위를 높일지 아니면 내 언어대로 두고 독자의 상상에 맡길지 하는 고민들은 수정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되었다.


내 상상 속에서 흠뻑 살았다. 내 소설 속에서 한번 더 살았다.


30초쯤 출간 작가가 되는 게 어떤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출간을 이뤄내고 홍보를 하며 뜨겁게 살아가는 다른 작가들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과정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혀갔다. 두 번의 투고가 나의 원고를 한번 더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에 만족한다.


몇 번을 읽어도 뜨거운 부분, 다시 읽으며 눈물 흘리게 되는 내가 쓴 나의 소설을 사랑한다. 내 소설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POD 출판에 대한 생각도 버렸다. POD로 나온 책을 주문해서 받아보니 표지 질감과 색감 처리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브런치 북을 최종판으로 비매품 소설, 삶의 별책부록으로 개별 바인딩할 거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 종이책으로 꼭 읽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개별 선물할 예정이다.


내 삶을 사랑해서 쓴 내 소설이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조용히 정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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