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한 라짜로, 2018, 알리체 로르바케르
[no 스포일러는 없다]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LAZZARO! ...
누구나 다, 대문자로 라짜로를 부른다. 끊임없이 부른다. 이일 저일 이 사람 저 사람이 계속 불러댄다.
Happy as Lazzaro(Lazzaro Felice)는 내가 본 로르바케르 감독의 네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은 작품이다. 키메라, 천상의 몸, 더 원더스도 독특하고 감동적이다. 모두 좋다.
네 작품 모두 시련과 수난, 성스러움과 다시 태어남을 모티브로 한다. 정신적인 성장과도 연결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의 겹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몰입하고 골몰한 퍼즐들을 모아 새로운 내 삶으로 가져다 산다. 나도 누군가를 향한 라짜로다. 그가 행복하기를, 그녀가 행복하기를, 그런 바람과 몸짓의 과정이 행복이다. 겉으로 보이는 시련과 수난은 행복의 레드카펫을 밟고 지나가는 중이다. 발자국은 카펫보다 항상 작다.
한국어 포스터에는 커다란 힌트 단어가 하나 붙어있다.
'당신이라서'
이 의미를 안다면, 이런 지근하고 뜨겁고 절절한 경험을 해봤다면 라짜로의 행복을 따라갈 수 있다.
라짜로 안에서 행복하다. 라짜로 밖에서 바라보며 답답하다. 라짜로의 귀는 그대로 듣고 입은 그대로 전한다. 마음은 한 곳을 향하고 행동도 똑같이 한 곳으로 향한다.
선함과 성스러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땀과 라짜로의 땀, 그리고 눈물은 다른 세상이다. 사람들은 라짜로를 죽이고 라짜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떠나간다.
당신이라서, 향해 서 있다가 구하려다가 죽었다가 깨어나 헤매고 찾아내어 도와주려다 죽어야 하는 세상을, 등에 지고 되돌아온 곳으로 떠난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속을 헤치고 유유히 터덜터덜 떠나간다. 늑대는 희망을 보았을까.
음악 때문에 두 번 봤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세 번 기억한다. 모두 라짜로의 그가 있는 곳이다.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정신없이 살다가 결국 정신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그'가 나오는 장면이다.
사악한 자궁의 이끌림에 따라 마른 몸, 대항하는 정신으로 '그'가 나타날 때
라짜로가 난 다른 자궁을 '그'가 관계로 이어 걷던 달 표면 같은 골짜기에서
희생양이 되어 정신 잃은 껍데기로 사는 '그'와 라짜로가 같이 걷던 철길에서
하란 대로 들은 대로 그대로 살다가 만난 한 사람을 위해 열병의 괴로움에도 자기 몫의 빵을 '그'를 위해 챙겨 떠나는 모습이 힘겹고 눈물겨웠다. 가볍게 툭 투 툭 떨어져 내리는 라짜로를 보며 튕겨 올라올 줄 알았다. 성스러운 환생으로 튕겨올라 '그'를 향해 뚜벅뚜벅 간다.
착취당하면서도 무기력한 농민들의 눈빛과 휘파람, 절망과 희망이다. 구걸하고 연극하며 사기 치며 살면서도 라짜로를 바라봐주는 그녀 또한 성스럽다. 라짜로의 '그'를 향한 눈물은 이빨을 드러내고 이기적으로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성스러움을 알아보지 못한 곳에는 가당치 않을 음악이 성당을 나와 라짜로를 따라간다.
'당신이라서' 라짜로는 어디든 간다. 그대로 보고 그대로 말하며 그대로 서성거리다 포악함과 천박함에 숨이 멎을지라도.
그래도 라짜로가 행복한 건 '그'에게 갈 수 있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마지막 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라서'
포스터 from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