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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03. 2024

데미안의 새(Bird)

 늦잠, 상처, 그리고 경의

알람을 한 시간 단위로 울리게 해 두고는 거의 항상 5분 전쯤 깨어 해지한다. 알람 메시지대로 한 적도 거의 없다.


깨어나요

먹어봐요

운동해요


4시, 눈곱으로 붙은 눈을 비벼 뜨고는 해제한 알람이 4시였는지 확인한다.

5시,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 습관성 순응으로 즐겁게 먹고 마신다, 300ml.

6시, 여전히 침대에서 뭉기적대다 다시 시트를 끌어 덮고 눈을 감기도 한다.


토요일에는 늦잠을 자곤 한다. 불금의 거친 숨 이후  온전한 내 시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빈 박스 같은 날, 깨어나는 순간 다가올 시간을 잡아넣기 시작하지만 그 편안함은 다른 평일에 비할 바 아니다.


오늘은 Demina 5) 장을 시작했다. 왼손 필사의 양상이 달라진 것을 요즘 느낀다. 이런 경의를 혼자 만끽하는 새벽이 좋다.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단어를 틀리게 쓰고는 가로 줄을 거칠게 그었다. 다시 쓴다. 마음에 작은 상처가 난다. 오래전 완벽하게 하루 10분이야 해놓고 틀린 단어를 마주하며 얼마나 당황하며 머뭇댔던가.


슬쩍 모른 척할까 종이 한 장 찢어버리고 다시 쓸까... 나는 결국 틀린 곳에 진한 가로줄을 그어 두고 옆에 다시 썼다. 내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다. 그 상처의 벽을 찢어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용기라고 부르겠다.


말도 안 되는 실수는 항상 말이 되어 내 시간으로 달려온다. 의미 없이 영혼 없이 쓴 곳은 영낙없이 실수한다. 주먹을 쥐지만 두 번째 실수가 하나로 줄지는 않는다. 포물선으로 틀렸다는 표시를 하고 다시 고쳐 쓴다. 아프다. 나는 이런 실수하는 아픈 인간이다. 맞바람에 움찔거려도 한 발 나가야 한다.


새로 건너온 페이지를 빼고 쓰는 바람에 올렸던 매일 기록을 삭제했다. 시간이 줄줄 새나가고 있다. 가장 내가 못 참는 시간 낭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페이지를 넣었다. p.93. 익숙한 습관이 된 카메라가 오늘따라 진저리 나지만 이 진저리를 한 번쯤은 참아본다. 곧 이 익숙함을 집어치우게 될 것이다.


새벽 5시 이후에 일어나면 늦잠이다. 그 이후 시간은 요즘 같은 쨍하고 습하고 뜨거운 공기 속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급한지 아직 모르겠다. 어떻든 잘 정리해 나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Demian 필사 1년 4개월 만에 알파벳 e를 거슬리지 않게 쓰게 되었고 f의 꺾임이 꽤 자연스러워졌지만 여전히 w의 경사에서 불안하고 소문자 t의 곡선에서 어색하고 매번 다른 s의 꼬리에 한탄한다. 내 인생이 그렇다.


늦잠에 여유를 보탠다. 이제 고양이 세수하고 드라이브다. 토요일 심장으로 산다. 나도 내내 거칠게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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