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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24. 2024

게으른 할머니

글 쓰며 게으르며

통창이 나 있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 위에 종이와 연필, 그리고 나의 노트북이 가지런한 작은 별채를 꿈꾼다.


살금살금 속삭이는 입에 자꾸만 귀를 가까이하고 싶다. 이 길어지는 상상을 한다. 내가 그어놓은 금을 지우려는 그가 애처롭다. 그래도 상상해 보는 것은 내 자유다. 벌써 행복하면 안 되는데...


게으른 것도 할머니가 되는 것도 김해서의 책을 읽기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김해서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등단을 하지 못하다가 산문집을 낸 사람이다. 그녀의 생각을 읽으며 외로움을 감지하며 잔잔히 내 갈 길을 골라냈다.



상상력이 밥 대신 미래를 짓는다 (p.66)에서부터 미련한 희망이 자꾸 나의 눈에 걸렸다. 눈을 감아도 할 수 있는 상상은 끝이 없을 테니까.


영어로 끄적거리며 울먹거리던 한 줄은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p.66) Those who love stories do not die.


이야기를 사랑한다. 나의 이야기 그리고 너의 이야기가 전부인 삶이다.


현실의 이야기를 안고 허구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허구의 상상이 현실의 시간으로 오기도 한다. 더 현실 같은 허구, 너무나 허구 같은 지독한 현실에 갈팡질팡한다.


글 쓰는 김해서는 엄청나게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졌나 보다.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기한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고 썼더라.


그렇게까지 글을 쓴다는 건 자기를 모두 드러내고도 그 끝 까맣게만 보이는 아래를 더 들여다보는 갈증 같은 것이 아닐까. 자신을 쓸 때도 타인을 쓸 때도 그럴 것이다.


쓰면서도 자꾸 모자라다. 쓰고 있는데도 쓰고 싶다는 목마름은 어쩌면 위선 같기도 하다. 제대로 못쓰니 그런가 보다. 목소리만 크고 이야기는 빈약한 모래 위의 성은 결국 허무한 건가.


어느 영화의 글 쓰는 사람처럼 내가 정말 읽고 싶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바로 그걸 써야 하는 거다.


통창이 난 글 쓰는 작은 별채를 허락할지도 모르겠다. 상상하며 꿈꾸기로 한다.


그런 생명이 흐르는 이어짐의 희망이 좋다.

내게 생명이 오는 가슴 두근거리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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