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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23. 2024

느릿느릿 흥분

어떤 두 번째

하얀 주사약이 혈관을 타고 차갑게 퍼질 때 눈에 들어차는 몽롱함을 붙잡으려 한 적이 있다. 아니 매번 그렇다. 그리고 항상 실패한다.


몸이 반응하는 얼마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한 쾌락이 핏줄을 타고 다니며 너울거린다. 그 흥분으로 우뇌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두통의 시작이다.


마음이 향한 그곳의 시작과 종료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때 참지 않고 다시 간다. N차의 평온과 농도를 조용히 즐기는 거다. 


지금 그 몸의 진동까지도 느낄 만큼 어떤 설렘에 대해 쓰고 있다. 나를 충전하는 배터리를 감촉하며 온도를 느낀다. 점점 뜨거워지는 농도가 달리는 도로 위로 진해질 것이다.




시동을 켜자마자 하늘이 뚫려 비가 내렸다. 지름이 반센티미터 정도쯤 될 것 같은 꼬챙이 같은 물줄기가 나를 찌그러트릴 듯 때리며 나머지를 길에 퍼부었다. 물이 몸에 닿지 않는데도 시원한 샤워를 한바탕 한 느낌이 좋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구도로를 달렸다.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길 양 옆에 커다란 초록의 숲으로 나무들이 지나간다. 빗속에 부지런히 흔들린다.


바람까지 흥분하니 마음을 꾹꾹 누르며 주문한다, 느릿느릿 온기를 느껴야 해. 그래야 여운이 오래 남거든. 차가운 가장자리부터 손길을 주는 거야, 이 굵고 서늘한 빗물이 내 아래로 흘러가듯이 말이야.




하필 딱 그 장면의 중요한 한 마디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분노와 통증이 표정에 그대로 올라와 카페를 뛰쳐나가던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빤히 보고 있었으면서도 날 때부터 뚫려있는 게 디폴트인 귀는 보이지 않는 철문을 닫고 있던 것처럼 음소거였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걸까.


그걸 보러 다시 온 거다. 큰 산을 하나 넘어 숲 길을 달려 나무를 헤치고 바람이 에스코트하는 나의 길, 전체를 보지도 못하고 달랑 1초의 기억 상실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사투로 오늘을 시작하는 거다. 


보이는 것들을 모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가리라 조심조심 살고 있다.


괜한 욕심에 겉치레 부피만 늘릴까 봐

허무한 갈증에 처음 마음을 잃을까 봐

시간이 아쉬워 집착하며 눈물 날까 봐

그리워질 때마다 당장 만나자 할까 봐

지나치게 살다가 아프게 후회할까 봐


그럴까 봐 두렵다.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항상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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