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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10. 2024

남벽 가는 길 2

[단편소설] 5-2

어쩌면 둘 다 집착과 아끼는 마음을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착은 너무 꽉 붙잡고 있어서 손을 놓으면 깨져버릴 것 같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거칠게 폭동 한다.


하지만 소중히 아끼는 것은 존재가 드러날 때마다 새롭고 주고 싶고 토닥거리고 싶다. 자꾸자꾸 듣고 싶고, 보고 있으면서도 그리운 그런 애틋함이다. 이별이 예정된 안타까움이다. 그러니 더 아끼게 된다. 있을 때 마음껏 아끼는 거다.


그의 걸음걸이를 아끼고 걸어오고 있는 저 거리를 아쉬워한다. 그가 들이쉬는 숨으로 들어갔다가 내쉬는 호흡으로 세상 구경을 한다. 그의 모든 온기는 나의 생명이다.


그가 그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내 몸 밖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몸 안을 뒤적거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몸인데 판타지 네거티브 필름 안에서만 존재하는 슬픈 덩어리가 무덤덤하더라는 말을 건조하게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게 사실 거기 진짜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의 미소가 너무 아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뚜벅뚜벅 만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너무 많은 것들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원하던 것들을 마음껏 흘렸고 원하지 않던 것들 조차도 마구 쏟아내도 될 것 같았다.


차가워진 온도를 되돌리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의 존재에 대해 들었고 그의 현재에 대해 말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새 사라지고 마는 하염없는 시간들에 대해 조급할 것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를 들으면 들을수록 왜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이 더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를 살리고 싶다.


“백록담 남벽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깊은 전철역의 에스컬레이터가 나를 땅 위로 올려주기 전에 그는 항상 먼저 떠난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한 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마치 24년을 같이 지낸 사람들 같았다.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 흥미롭고 쓸쓸하다.


일방적으로 남벽을 통지하고, 전철역 앞 바래진 후텁한 바람이 부는 땅 위에 올라오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앞서 간 그의 향기가 어느 길에 조용히 내려앉았을지 길게 목을 빼어 보다 더 긴 눈물을 흘렸다.


오래오래 그곳에 서 있었다. 집착하면 안 된다고 내 귀에 들릴 만큼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다음 날도 이 7-3 전동차 입구 앞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른 새벽에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How helpless I have felt! A huge wave of emotion swept over me when I heard about him. He seemed innocent, pure, and inherently perfect to me. Why has God burdened him with a life filled with agony? What can I do for both him and myself? I’m not the type of person who sits idly and waits for fate.


이 무기력함을 어떻게 할까! 거대한 파도로 감정이 밀려와 나를 휩쓸어갔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말이야. 결백하고 순수하고 원래부터 완벽하게, 그는 내게 그렇게 보였는데. 왜 신은 그에게 그런 고뇌의 삶을 지어준 걸까? 그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운명에 순응하며 게으르게 주저앉아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사처럼 살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오래 전의 나 자신이었다. 오늘 글의 주제는 Active caring, 아끼는 마음이다.


나는 할 만큼 살 만큼 열심히 단단하게 잘 살아왔으니 내 삶의 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내려는 사람인 거다. 세상이 너무 지루하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몰상식이 범람하고 조직이 있는 곳마다 정치학으로 비열하게 굴러간다. 나 또한 그런 저열한 세상에서 꼿꼿이 살아남았다. 크게 성공했지만 형편없이 실패했다.


몸은 불어났지만 마음은 다 타버린 초의 심지처럼 회색의 재로 남아 푸석하게 꺼지고 있었다.


가장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로 결국 돌아와 나를 남겨주고 갈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You don’t belong here.

네가 있을 곳이 아냐.


지금이 그때인가요? 그 사람이 맞는 건가요? 거기, 당신은 누구죠? 악몽에서 화들짝 깨어 앉아 이마를 짚었다. 누군가 내 이마를 오래 쓰다듬었던 것처럼 따뜻했다.


11월 6일 끝자락, 그 하루는 60일만큼의 내 삶과 바꾼 것처럼 진하게 농축된 날이었다.


주제 글을 마무리해서 업로드했다.


However, reflecting on my strong feelings, I realize that my emotional journey has always involved sympathizing with others. This sense of empathy has shaped me, and I have no regrets, as it is a fundamental part of who I am. Have I ever been deceived by difficult times or the potential for shocking turns of events?


그렇지만, 나의 강한 감정들을 돌이켜보면, 그 감정의 여정들은 항상 타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공감하는 마음은 나를 만들어 왔으며 후회는 없다. 왜냐면 그게 지금의 나를 이루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나 어떤 상황의 충격적인 반전 가능성에 속아본 적이 있던가?


내가 갈 곳을 정했기 때문에 흔들림은 없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정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순서대로 머릿속에 기록해 두었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나를 정리한다. 그를 다시 만나면 내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제주는 나를 살리러 가는 곳이다.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하얗게 네모 상자 같은 펜션을 예약했다.


길게 딸려 붙은 늘어진 땅을 떠나 향하는, 갈색으로 흐려진 내 허벅지의 몽고반점 같은 제주는, 위잉거리는 비행기 바퀴 빠지는 소리가 나며 착륙 준비를 할 때부터 나를 공기처럼 가볍게 떠올린다. 나를 연결한다. 뜨거운 나의 손으로 나를 살리러 온다.


그 뜨거움을 다시 준비한다. 그 온전한 하루가 통째의 삶이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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