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도니 돈 2
[엽편소설] 나도 돈다 2-2
장학금의 의미가 뭘까를 되묻던 내게 현진은 별꼴이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태경이 달콤하게 혀를 놀려 현진이 입맛을 다실만한 거래를 제안하는 과정에서도 10만 원을 더 주니 덜 주니 말이 많았다면서 현진은 태경이 치사하다고까지 험담을 해댔다.
'너희들끼리 잘 해결해라.'
나는 피가 아래로 쏟아져 내려 내 머릿속이 하얗게 빈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배우는 과정에서 받는 장학금, 아니 대학원에서 입학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주는 교사 장학금이란 것이 교통비나 끼니를 해결하라고 주는 것은 아닐 터였다.
교사는 가르치며 배우며 연구하는 사람이니 열심히 배우라는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주거나 더 연구하라는 장려금이라는 게 맞지 않은가. 앞으로 더 좋은 인재가 되라는...
그렇게 두 학기 넘게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쫓아다닌 이유가 순전히 내가 밥을 사주고 커피를 사주고 우울할 때 이야기 상대를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현진을 순수하다고 생각했고 팀으로 연구하고 발표도 같이 하면서 행복했었다.
그런데 기본 가치를 모두 싸잡아 어디론가 날려 버리고는 돈을 나누는 것에만 골몰한 대학원생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보이는 현진이 나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 같았다.
나의 겉과 속이 현진을 향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그 이후 졸업할 때까지 눈을 마주친 적도 누나라는 호칭을 다시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듣지 못했지만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곤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로 떠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똑똑'
연구실에서 다음 강의를 준비하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40대쯤의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앉으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테이블 앞 의자를 빼고 아이를 앉히더니 자기도 털썩 앉았다. 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라 했다. 내 전공 수업에서 B를 받은 아이였다.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상황에 기분이 상하면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원래는 애 아빠가 오려고 했는데 제가 데리고 왔어요. 이번 학기 성적이 나왔는데 보니까 교수님 성적만 B가 나왔네요. A만 받았어도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애가 그러더군요. 100만 원이 한 두 푼도 아니고.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빤히 그 엄마를 바라보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어떻게 당신 아이가 B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잘근잘근 한 학기를 분석해 줄까 독기를 슬슬 품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혹시 임덕주...? 맞죠? 언니, 나야 나, 태경이! 우리 대학원 석사 같이 했잖아요!"
나는 아이와 그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태경이가 누군지 과거로 쏜살처럼 달려가 기억을 뒤졌다. 아, 그 성적 장학금! 그래.
"아, 저 임덕주 맞아요, 아이가 우리 학교를 다니고 있었군요."
"무슨 존댓말이야, 우리 그때 친하게 지냈잖아, 언니!"
그런 기억이 없었다. 언니라고 불린 적도 없는 것 같고 20년 전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찌든 40대 아주머니의 표정이 두렵다고 하는 게 맞았다.
아이고 언니 오늘 운 좋네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다닌다는 둘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 수업에 들어가 깽판을 친 얘기까지 몰상식 비상식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꾸역꾸역 웃으며 대화를 끝내려는데 태경이 한마디 더 했다.
"언니, 나 현진이하고 결혼했잖아. '너도 성적 장학금 한번 받아봐야지'하고 꼬드기는 통에 홀딱 넘어갔지 뭐야. 지가 받을 거였다면서 돈은 거의 다 지가 가져가더니 공치사 사탕발림에 결국 나도 넘어가고... "
나는 비위 상했던 그 옛날 성적 장학금의 공포로 다시 돌아갔다.
돈이 돌고 돌아 대대로 나를 쫓아와 내 꼭지를 돌게 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