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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25. 2024

낯선 뜨개질

1916

잠시 정차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주차 블록 위에서 그 앞 차의 뒷 번호판을 봅니다. 보입니다. 세상이 구렁텅이 같다가도 언뜻 앞에 보이는 숫자들이 명확하게 읽힐 때가 있어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마음을 달래 가며 삶에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1916을 자신에게 보이는 다른 숫자와 연결하여 그 사이 삶들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1916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작가일까 예술가일까. 나는 그가 예술가임을 압니다.




1. 9. 1. 6.

10. 7.

17.

8.


다 더한 한 자릿 수로 8이 되면 지난주 8월 북토크의 무한대 기호, ∞가 됩니다. 의미를 놓고 가는 기호마다 세상 곳곳의 찐득함이 묻어납니다.


10과 7이  나오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습관처럼 만드는 더하기 10, 올해 우연히 자주 마주치는 7입니다.


10과 7.

15와 2.

8과 9.

11과 6.

16과 1.


한자리로 독립시켜 앞으로 나란하게 줄 세웁니다.


01256789.

3이 없어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줄 수 없어요.

쑤욱 내민 입술 같은 3, 아무래도 거절입니다. 


가장 최근 통화했던 전화번호를 읽어 봅니다.


01256789.

3과 4가 없어요.

그들의 전화번호를 말해줄 수 없어요.

공교롭게도 모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3과 4가 빠진 저 숫자로 제게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면 아마도 제가 앞으로 사랑할 사람일 수도 있겠어요. 이런 의미 확장 놀이가 기대와 희망을 가져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놓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잡고 살아가고 싶어요. 의미란 것들을 말이죠.


부족한 게 맞는 거예요.

보물찾기 하듯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낯선 자동차 번호판에는 제가 없어요.


눈앞에 정확하게 읽히는 저 숫자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1916 외제차는 낯설게 살고 저는 저대로 의미 찾아 삽니다.


외제차는 떠났어도 숫자는 남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엮어준 하루, 오롯이 기억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낯섦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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