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동화]
"선생님! 선생님! 제가 왜 늦었는지 아세요?"
지각을 무척 싫어하는 걸 아니까 항상 전속력으로 최선을 다해 왔다는 것을 숨가쁨으로 먼저 전한다.
속으로는 웃긴데 겉으로는 심각한 척하려다가 매번 실패다. 귀여운 앤디, 6학년 아이다.
난 씨익 쪼개며 짝다리를 하고는 턱을 치켜든다.
"왜?"
"제가 오늘 우산을 들고 나왔거든요. 근데 지금 왜 우산이 없는지 아세요?"
"왜?"
이쯤에서 엄청 호기심에 안달 난 표정을 해야 한다.
"오늘 비가 아주 쪼끔 왔는데요, 전 우산을 쓰고 오고 있었거든요. 다른 애들은 하나도 안 썼더라고요. 제 기분이 어땠는지 아세요?"
모른다고! 모른다고! 그니까 니 우산이 어떻게 됐냐고! 이렇게 다그칠 수도 없는 일이니 웃음을 거두지 않은 표정을 진득하게 하고 있어야 한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지금 언어치료 중이에요. 철자에 소리를 입히는 훈련을 하는데요, 많이 느려요. 다른 곳에서 여러 번 거절당해서 아이가 상처가 많아요... 죄송해요.'
그게 뭐가 죄송할 일인가. 아이와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그저 받아만 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가 하얀 얼굴로 긴장해서 엄마랑 꼭 붙어 앉아 나와 눈 맞춤조차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를 배우러 내게 왔다.
"우산이 저 담장 너머로 날아가 버렸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비도 거의 오지 않는 날 우산을 쓰고 오다가 휙 큰 바람이 갑자기 불어와 우산이 날아갔다는 얘기였다. 나는 창 밖을 유심히 보며 앤디의 우산을 날렸다는 바람을 감지해 보려 애썼다.
수업하러 들어오는 아이마다 우산을 가져온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아, 정말 놀랐겠는데? 이따 집에 가다가 담장 너머 한번 살펴봐야겠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산도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조금 쉬게 두려고요."
"아..."
앤디는 오늘도 영어 단어를 소리 내며 고투하고 있었지만 내가 다가가 어떤 문장을 읽고 있는지 가까이 허리를 굽힐 때마다 명랑하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I can do it. I can do it. 이노 그 흐? 이너그? 충분한... 모르면 질문하면 되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결국 질문을 하고 이너프 enough라는 걸 알고는 프프프... 반복하는 앤디는 그날 알게 된 그 단어 하나에도 스스로를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gh가 high처럼 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낸 앤디는 '높은, 높게'를 넣은 영어 문장을 사전에서 따라 적으며 소리가 없는 유령 같은 허무한 글자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한국어를 배우며 쌓는 상상력이 먼저다. 그러면서 다른 언어의 신기함을 배워가는 앤디는 치료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아이가 아니라, 조금 더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 있는 학습 속도를 응원하며 따라가 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아이일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다.
"선생님, 선생님! 오늘 제가 5분밖에 안 늦은 이유가 뭔지 아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