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Sep 15. 2024

세상을 겪다

규정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맞짱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어렵고도 어렵다. 아이들도 어렵고 어른들도 어렵다. 나도 어렵다.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 후에는 눈으로도 손가락 하나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사실은 여기서부터 위험한 관계가 된다.


내가 무척 예뻐하는 그 아이는 숙제를 안 해온 날에는 눈을 맞추지 못한다. 나도 애써 눈을 맞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숙제를 하지 않은 기록을 바라볼 뿐이다. 아이의 미안한 마음이 전해오면 나는 같이 미안해져서 숙제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 더 하고 싶게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 하루 나는 그 아이 덕분에 배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무척 좋아하고 나를 더 좋아하는 내 친구는 만날 때마다 새롭다. 서로 다른 게 많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그녀가 그녀의 언니를 내게 소개하며 같이 친구 하면 좋겠다는 말에 나는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만나는 그 순간부터 동등한 눈높이다.


나는 그녀 앞에서는 평등주의자, Egalitarian이라고 크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임시 단기 고용되어 첫 할 일에 대한 브리핑을 받기 위해 만나러 나갔다. 내 의향은 상관없이 고위 공무원 부부와 넷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제길! 당신 주변에 장관, 서장, 변호사, 판사, 10억, 100억, 그런 거 관심 없다. 나는 그날 뜨거운 뙤약볕에 점심도 거르고 기다리는 관공서 운전기사 청년에 너무 미안했다.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줄 모르는 바보들 사이에서 밥을 후루룩 말아먹고 밖으로 나왔다. 비열하게 밟고 싶고 비굴하게 웃고 싶다는 속내를 다 드러내도 웃고 있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날 나는 초라하고 더럽고 닳고 닳은 세상을 보며 덩달아 초라해졌다.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만든다. 그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관계는 어차피 충돌과 불꽃과 어울리는 방식이다. 세상에 낯을 가리면서도 매일 한 걸음씩 사람을 향해 다가가는 용기, 그런 마음을 만드는 다짐을 매일 새롭게 하는 건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그. 럼. 에. 도.


권력, 학력, 재산, 나이로 규정하는 관계는 딱 그만큼 천박하다.


시험 보겠다 엄포 잦은 선생님은 천하게 힘을 남용한다.

배움의 가치를 서열로 매기는 사람들의 입은 부끄럽다.

오직 돈으로 행복하다면 돈의 갈증에 항상 불행 중이다.

나이 골몰하는 건 그 차이를 불평등으로 채우려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체증의 한계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