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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23. 2024

블루랑 발랄 랄라

ㄹㄹㄹㅂㄹㄹㄹ

블루랑 놀다가 발랄해지자.


♪♬♬♪♬♪♬


마음이 파래질 때 새콤한 파래 무침

얼굴이 노래질 때 따뜻한 레몬주스

기분이 보래질 때 보라색 단팥 라떼


오늘은 그래서 블루했다 노랬다가 팥죽색 보라를 먹기로 한다.


우울한 날은 그래보는 거야.


♪♬♬♪♬♬♬♪


야시장에서 슬픈 눈으로 깎아 달라 흥정한 아주 묵직하고 움푹한 도자기 접시를 펼쳤다. 색깔은 연한 듯 거친 듯 내 마음에 꼭 드는데 한 손으로는 들 수 없는 무게감에 발등에라도 떨어지면 눈에 별이 박힐 것이다.


숙성하여 켜켜이 쌓아 둔 아주 작은 미니 단호박을 빡빡 씻어 소금과 베이킹파우더 액에 담가 두었다. 왜 하필 이름이 빵을 만드는 파우더냐 단호박이 대들면 할 말은 없다. 네 몸의 균이랑 벌레랑 혼줄을 내주려는 거다.


매일 먹는 거의 날노른자인 반숙 달걀 중 하나를 반을 가르고 고소한 검정 올리브도 반으로 쪼개어 질퍽한 노른자 안으로 꾹 박아 넣는다. 딱 이만큼의 간이 노른자를 더 입에 붙게 올리브를 더 고소하게 한다.


소금욕을 마친 미니 단호박의 위쪽 사분의 일을 잘라 씨를 숟가락으로 퍼 발라내고, 겉의 여기저기 굳은살 같은 딱딱한 딱지를 칼로 저며내야 한다. 쪼끄만 게 무슨 고생을 했다고 굳은살이 이리 빽빽한지 가엾다.


옴폭한 사발과 그 뚜껑처럼 변신한 단호박을 가지런히 놓아 레인지에 넣어 오분 간 강으로 뺑뺑이를 돌린다. 오 분 후 쿡쿡 찔러 꼬다리 옆까지 부드러우면 끝이지만 보통은 사오분간 추가 레인지 쿠킹이 필요하다.


잘 익은 밤호박의 오그라든 뚜껑을 손으로 조물조물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만들어둔 요플레 한 숟가락을 넣어 통후추를 박박 갈아 뿌려둔다. 먹을 때쯤이면 후추가 요플레에 스며들어 파스텔 흐릿한 갈색으로 요염해질 것이다.


니 단호박의 몸을 반으로 갈라 눕혀 한쪽에는 붉은 팥알이 듬성한 단호박 수프 두 숟가락, 다른 한쪽에는 쌀알이 풍성한 짭조름한 팥죽 두 숟가락을 얹는다. 보기만 해도 벌써 꿀꺽, 내 안의 세로토닌이 춤춘다.


수프 두 가지는 집에서 만들려면 반나절은 걸릴 거라 근처 마트에서 산 씨O표다. 꽤나 실하다. 밀폐 용기에 담아두고 드레싱으로 사용한다.  


냉장고를 기웃거리다가 일주일에 한 번 안주로 먹는 샤인머스켓을 한 줌 따서 흐르는 물에 씻은 후 하얀 달걀과 요플레 쪽으로 가지런히 놓는다. 오늘은 눈에 띄게 행복하고 싶으니까 정신 딱 드는 색 대조에 힘쓴다.


♪♬♬♪♪♬♪♬


포크와 나이프, 정갈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 슥삭슥삭 먹어 치웠다.


그래서 나 지금 행복한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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