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전쟁

장지, 長指

by 희수공원

애초에 입구가 문제였다. 그곳을 둘러싼 공기가 습하다 느낀 건 마음이 질척해서일지도 모른다. 우는 마음의 물기와는 다른 극도의 건조함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꽤 오래 감지하지 못했다.


결국 딱딱한 각질로 치켜든 고개를 쭉 뽑아낸 것이 원인이었다. 악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날카로운 창을 들지 않아도 온몸을 꽂아 퍼뜨리는 균덩어리를 뱉어 낼 힘 따위는 없다. 악은 순식간에 점령하기 시작한다.


균이 가득한 대포를 쏠 것이다. 그 자리에 불꽃이 일어나 생살을 태울 것이다. 뒤늦게야 사태를 파악한 가장 길게 뻗은 그곳에서 스스로 이겨내려는 움직임이 가엽다.


불을 받아내고 한껏 얼려 되돌리면 누런 시체더미가 쌓이기 시작한다. 더미가 쌓이는 곳은 당연히 부풀어 오른다. 있는 힘껏 다섯 개를 쫙 펴고 가운데가 얼마나 부었는지 눈길을 준다.


누런 더미를 꾹 누르면 시체가 터져 나올 것이다. 아니, 아직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괜히 물리친다고 찢어 냈다가는 더 오랜 염증에 타는 듯한 열기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호. 호. 아프다.


얼룩으로 남은 검붉은 핏덩이를 외면하느라 붙여둔 밴드로 가운뎃손가락을 두툼하게 만들어 세상을 향한다.


타인을 향해 지켜든 장지(長指)로 나로 향하는 집게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 부끄러워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는 건가 보다.


땡땡 부어오른 장지를 쪼개어 모든 나쁜 기운들을 장지(葬地)로 보내야지. 한가위 아침에 커다란 가위를 휘둘러 내 속의 앙금들을 잘라내야지.


멍하니 뜨거운 생인손 바라보며 명절을 맞는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차례차례 자유를 얻을 나의 다섯 손가락, 하나가 아프대도 사는 건 계속된다.


Happy Chu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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