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하고도 신선한 아침 산책 중 어느 식당 앞에 크게 걸린 간판, '우족탕, ' 풀쩍 한 발 옆으로 물러서서 다시 한번 바라봤다.
단면 MRI 찍은 것 마냥 얇게 저며져 둥글넙적 핏빛 사진이 자랑스레 걸려 있다. 저걸 먹을 땐 뼈들이 오글바글 입안에서 굴러다닐지 살만 쏙 빠지고 부드럽게 입 밖으로 나올지 상상한다.
사진을 보니 소의 발만 덩그렇지는 않더라. 발 위에 이어진 건 분명 다리일 텐데. 마디에서 똑 분지르면 우족탕이 되나 보다.
우족탕을 먹어보진 못했다. 저 뽀얀 국물은 어떤 맛일까.
족은 발이다. 한자로 발 족, 足, 그런데 족발이라고 파는 걸 보면 그건 또 돼지란다.
족발 하면 떠오르는 건 진하고 윤기 나는 갈색의 피부, 때론 까맣게 털이 박히기도 한 그 껍데기가 떠오른다. 소는 비싸서 MRI 단면 형태지만 돼지는 싸니까 발을 통째로 진열하나 보다.
여전히 족발도 돼지 발만 있지는 않더라. 소보다 얇싹해도 한 뼘쯤은 다리가 올라 붙었다. 저기 붙은 살을 저며 쌓으면 반짝이는 족발 한 접시가 되려나 보다.
게다가 족발은 족은 한자, 발은 우리말, 족이 발이고 발이 족인데 역전앞 족발집은 귀에 익은 조합이다.
돼지 족발도 먹어보진 못했다. 그 윤기의 향기가 궁금하긴 하다.
우리는 돼지나 소를 깡그리 발라 먹는다. 귀부터 꼬리까지, 꼬리에서 발까지, 뼈를 우려 뿌옇게. 돼지는 껍데기도 다 벗겨먹고 소는 낡을 때까지 신고 다닌다.
과거에 내가 먹고 또 먹었던 돼지나 소를 소환하면 커다란 농장 하나 차리게 될까. 살아온 시간 중 20%쯤은 채식주의자였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 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환경주의자이거나 동물애호가여서는 아니다. 그냥 육류 씹을 때 나의 이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내 삶도 질긴데 먹는 것까지 질긴 느낌을 피할 뿐이다.
그렇게 어쩌다 생선과 댤걀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Pesco Vegetarian; Pescatarian)이 되었다. 편하게 산다.
그런데 관심도 없던 고기 원재료, 돼지와 소, 족발과 우족탕을 이어보자니 왠지 가슴이 먹먹한 게 한판 묵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저렇게 남김없이 사람을 위해 사는 동물들이 있다니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다를 게 없다. 동물도 나무도 그리 저리 희생하며 사는구나.
'우족탕' 간판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런저런 잡스런 상상에 아침 산책이 쓸쓸하다. 가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