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Sep 27. 2024

러브, 비, 큰 창

해체 후 긍정

묶어둔 단어들을 찢어 나누어 펼쳐두고 어디쯤에선가 분명할 기분 좋음을 탐지한다.


러브, 사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팔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침대, 오른팔을 쭉 뻗으면 닿는 에어컨의 리모트 컨트롤, 왼쪽으로 돌아 누우면 덜컹덜컹 살아있는 나의 심장, 책 읽을 때 등에 기댔다가 잘 때는 내 다리 아래 깔리는 커다란 쿠션...


비, 그 안에서 즐기는 것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흰 장화를 신고 물 웅덩이마다 마음껏 들어가도 좋고, 진한 남색의 흰 땡땡이 우비를 입고 헤매 다녀도 좋다. 근처 숲 속 어린이 공원 놀이터의 플라스틱 그네에 올라 흔들거리며 얼굴에 비를 맞아도 좋다.


큰 창, 시원한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에 얼마나 감사한가.


초록색 숲이 들어 있는 액자 같은 곳, 눈이 오면 디지털 앨범처럼 하얀 판타지로 가득 차고, 가을 낙엽에 같이 쓸쓸해 흔들리는 나무를 담고 있는 곳, 봄이 오는 햇살을 가득 담아 오는 큰 품이 고맙다. 


긍정은 길을 만들고 기대는 길을 보게 하니 마음을 한 곳으로 몰아 애써 희망을 품는다.


그런 때가 있다. 실수했구나.


프리미엄, 명품 따위의 단어가 내 옆에 붙었다면 그건 내가 나를 가볍게 여겼다는 뜻이다. 프리미엄이 되려다 프리한 공짜로 전락하고 명품이 되려다 명품이 주는 덤으로 던져진다.


명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향으로 그냥 지나치려는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 향기에 스스로 내려앉는 프리미엄이라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독서에 프리미엄이 어디 있을까. 웰컴키트라는 유행은 이미 바래지고 희뿌연데 명품이란 민망한 글귀에 내 귀가 달아올랐다.


그래도 마음을 접지는 말아야지.


시각 중추의 텍스트 처리가 이해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장애는 근육의 민첩성만 늘려 놓았나 보다. 클릭으로 잡아둔 줌zoom감옥의 한 시간 무음 판타지에 불그레한 당황만이 납작한 얼굴에 떠돌았다.


읽는 모습을 전시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분위기 흐리면 강퇴 권고한다는 건 어떤 걸까.

야자 타임에 화면에 대고 춤을 추면 강퇴일까.


처음이 어려워 훨훨 다양하게 펼쳐진 날개를 제대로 타지 못하고 있다. 첫 클릭의 실수에 눈물만 그렁하다. 그리도 흥분했던 북토크 세트는 시간이 맞지 않아 날아가 버렸다. 매월 참가하는 북토크가 끝나가니 그 두려움에 너무 서둘렀나 클릭했던 손가락을 원망한다. 


하지만! 첫 눈물이 마지막 통곡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책들과 멋진 주제들을 가득 담은 계간지를 받을 터이니 감 없이 클래식만 뒤적이던 무의식적 진부함을 뒤로하고 현재 사건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하는 주제와 삶을 돌보는 사회를 위한다는 큰 주제가 끝까지 생생하기를 바란다. 보내오는 글 꼭지마다 촘촘히 읽고 나면 큰 책임감이 생기는 텍스트의 마법에 푹 빠지고 싶다. 


내 삶에서의 돌봄은 무엇일까. 


옷장과 신발장을 채우는 동물들의 가죽과 털을 반성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덜 소유하며 필요한 것들 뚝딱뚝딱 만들어 쓰고 버릴 것들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그런 일들이 내게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돌봄 미션이라고 한번 더 곱씹으며 중얼거려 본다. 


첫 번째 야간 자율학습 미션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미끄러졌지만,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은 그나마  익숙하니 두 번째 미션은 꼭 제대로 마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적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