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Nov 02. 2024

남벽을 향해

굳건한 지금

경사지며 좁 휘도는 도로를  따라 반짝이며 반사되는 한강 내 오른로 같이 달린다. 이 순간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한라산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짙고 촘촘한 구름 위에서 맑음과 궂음을  함께 상상한다. 맑고 평온한 곳을 빠져나와 비바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 날을 모험이라 부른다.



1100 고 도로를 좋아한다. 비가 내려 떨어진 낙엽이 흠뻑 젖어 차바퀴를 자꾸 잡아당긴다. 휘청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고운 색깔로 사로잡아 놓고는 바로 밀어내버린다. 비 오는 산길의 지루하지 않은 변덕이겠지 한다.



길로 들어서며 안개비를 그대로 받아 안고 걸었다. 미세하고 촘촘한 미스트가 온몸에 내려앉으며 소리 없이 내게 스며들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어느새 나의 습관이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의 거울이 된다. 어느덧 가까워지며 닮아가며 그렇게 서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좋은 쪽을 더 많이 바라보자 다짐한다.



병풍바위도 안개가 되고 저 건너편 작은 폭포도 안개와 같이 실오라기처럼 아래로 흩어진다. 오늘은 한라산이 안개 샤워를 하는 날이다. 나도 덩달아 얼굴을 맞대어 본다.


구름이 걷어간 비는 안개가 되었지만 바람은 오를수록 기가 더 세졌다. 은 조릿대 구릉을 지나며 몸이 휘청거리니 세상이 같이 어질어질했다.



보기에 평온하고 넓은 품으로 관대할 것 같은 금빛의 초원은 쐐기 같은 따가운 바람에 기를 쓰지 못했다. 보이는 아름다움에 한껏 취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통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피소까지 뛰었다. 할 수 있어.



저기 중간쯤에 남벽이 못난이 참외 배꼽처럼 솟아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거기 그대로 남벽은 굳건할 것이다. 내가 기원하는 것들을 남벽은 이미 알고 있을 다. 응원할 거라 믿는다.


1700 고지 세오름에는 남벽 가는 길이 통제되고 있다. 비가 갑자기 세차지고 바람이 세다.


지금 나는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남벽 가는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며 글을 다.


이 글이 끝날 때쯤 통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의 핍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