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니고 상대도 없고 거기 없는 그것들을 지식으로 익히며 살아간다.
윤세의 세상은 완벽하다.
사회라는 틀에 콕 들어앉아 하나씩 간을 보듯 세상을 객관화하면서 안전하게 산다. 사회화의 시작이었던 유치원 이전에는 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웠다. 그냥 그쪽을 바라보고 그쪽을 향해 걸어가면 먹을 것이 있었고 입을 것이 있었고 뒤이어 항상 너울거리는 쓸쓸한 어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상관없었다. 입으면 보드랍고 따뜻한 면내의와 장식용 버튼이 반짝거리는 꼭 맞는 구두는 그 무엇보다 윤세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피부에 닿는 촉감은 면이 최고였다. 윤세는 건강했고 윤기 흐르는 피부에 단단한 팔다리와 긴 손가락을 가졌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아시는지 윤세에게는 완벽한 롤모델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는 건 참으로 이상했지만 그런 게 부부인가 보다 했다. 그 어린 생각 속에 각인된 모습이었다.
시립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인 그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첼로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바라는 단 하나 입밖의 욕망이었다.
‘윤세가 첼로를 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전공인 첼로를 시작하게 된 건 미스터리였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는 간간이 말없이 지하 방음실에서 첼로를 켜곤 했다. 어머니가 흐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루 두어 번씩 방음실의 문은 단단히 안으로 잠겨 어머니를 삼키고는 내놓지 않았다.
영차영차.
윤세가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는 별채 작업실에 들어가 아기 침대를 만들어 윤세의 방에 설치했다. 방 구도와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맞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처럼 몰입했고 성공했다. 아기는 포동포동 잘 자랐고 하루 네 번 모유 수유를 위해 윤세의 방에 들어오는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들어오는 어머니의 분위기를 막 돌이 된 윤세도 감지했다. 하루 네 번의 모유수유, 아버지의 계획된 일정이었고 어머니는 그걸 벗어나면 실패하는 하루가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쭉 첼로를 연마했다. 아버지는 첼로를 켜는 윤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팔길이를 재어보곤 했다.
옆으로 팔을 벌리게 해서 목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의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에 맞추어 면밀하게 줄자를 대어보고는 거기에 꼭 맞는 첼로를 구해주곤 했다. 다섯 살 때 1/8 크기부터 시작해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지금 4/4 크기의 첼로까지 모두 아버지가 구해준 것이었다.
첼로 전공을 한 어머니는 윤세의 첼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세상의 첼로 지식을 모두 들여다보며 윤세에게 최고의 첼로를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굳건히 믿었다.
첼로는 윤세에게 정복해야 할 세상이었다. 어머니가 바라보는 첼로는 윤세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삼인칭이었다. 첼로를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빼꼼 열렸던 지하 방음실의 철문을 통해 본 적이 있었지만 마치 그건 벽에 걸린 낯선 명화를 보는 것 같았다. 왜 저 그림이 저기에 걸려있는 걸까.
책을 읽으며 세상의 모든 첼리스트들을 공부했다. 감성이라는 이론들을 각각의 첼리스트마다 라벨을 달아주고 그들이 연주했던 곡들을 켜며 그 감성들을 대입시켰다. 이 첼리스트의 이 연주는 회한과 속죄하는 감성이구나, 음률과 빠르기가 이래야 깊은 슬픔이란 걸 연주할 수 있는 거구나. 다시 듣고 암기하고 다시 반복해 지식으로 기억해두곤 했다.
영차영차.
세 살 터울인 윤세의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자식의 남녀 비율이 맞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려 했던 당시 캐치프레이즈에서 아버지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어머니의 영혼은 이전보다 더 오래 지하 방음실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게 뭐가 슬픈 일이지?’
윤세가 학교에서 배운 어머니라는 정의와는 너무 멀어 혼란스러웠다.
오늘 오케스트라 연주는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이었다. 윤세는 바로 옆 새로 온 첼리스트가 무척 거슬렸다. 마치 첼로와 하나인 것처럼 내내 눈을 감고 약간 큰듯한 첼로를 온몸으로 감싸듯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윤세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그녀가 윤세를 향해 서서 한마디 했다.
‘너무 추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