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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12. 2024

투영

[엽편소설] 고독

혼자인 새벽이 될 때마다 안도하며 일어난다.


자정을 알리는 궤종은 열두 번의 울음 사이에 새벽을 끌고 와 옆에 두고 간다.


가장 많은 흐느낌과 가장 짧은소리 사이에 항상 깬다. 새벽이 가장 신선한 시간에 오염되지 않은 나만의 공기를 마신다.


철커덩! 꿈을 깨는 소리는 요란했다. 꿈을 향해 잠긴 문을 한 겹 더 잠그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타인의 숨소리가 나의 새벽 공기를 가져가지 않는 날이 시작되면 더 일찍 깨어 서성이곤 한다.


사람들을 지나 혼자인 이곳에서는 내가 신이다. 철문의 신, 벽의 신, 창문의 신, 천장의 신, 그리고 항상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변기의 신이다.


사람은 삶이라는데 나는 왜 꼭 지나쳐버리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의 혼자를 얻어낸 건 말이 아니라 각도였다. 고개를 45도쯤 오른쪽으로 돌리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각도, 흐린 미소까지 곁들여 5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곤 타인의 거친 숨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 된다.


날카롭게 벗겨져 들려 올라온 녹슨 쇳조각이 경첩 사이에서 빼꼼하다. 지난번처럼 손가락을 맡기진 않기로 한다. 식판의 눌어붙은 비린내 나는 붉은 흔적은 사람을 부른다.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비껴나간 듯 비치는 바래진 해는 네모난 작은 방을 한동안 훑어간다. 마음을 말리고 머리를 말리고 가슴을 말리고 싸움을 말리고 피를 말린다. 피가 다 마르기 전에 혼자가 된 건 다행이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눕는다. 열두 번 궤종 사이의 어둠에 깨어나려면 소리에 예민해야 한다. 작은 구멍을 따라 취침을 울리는 비명에 천장도 무거운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다. 나의 하늘이 꺼진다. 땅도 꺼진다.


완벽하고 온전한 새벽의 어둠과 고요를 오롯이 혼자서 다 차지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말하기가 싫다. 듣기도 싫다. 입과 귀가 사라진 후 여기에 다.


냉기로 가득한 독방의 칠흑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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