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에 대해 말도 많고 음모론도 찌글찌글하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데 용기를 냈었다. 20대 초반 헌혈을 처음 했다.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고 몸이 달라지는 반응도 없었다.
나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씩씩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다. 내 몸에서 가늘게 빠져나가는 피가 흐르는 튜브를 보면서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 오히려 뿌듯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의사의 홍보 말대로 정말 헌혈은 계속 계속해도 되나 보다 했다.
바쁘게 살다가 문득 헌혈차를 보자마자, 아, 헌혈한 지 오래되었구나, 벌컥 차 문을 열고 문진표를 쓰고 피검사를 했다. 이전에도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거렸지만 절차는 더 까다로운 듯 보였다.
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헌혈 버스 계단을 터덜 터덜 내려오며 세상이 내게서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라라크루 오늘의 문장 과제인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그 이후로 한동안 헌혈을 하지 않았다.'를 읽자마자, 그럼 당신은 앞으로도 헌혈을 할 수 있겠구나 했다, 나는 할 수가 없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를 세상과 나누는 방법 한 가지를 잃었다는 게 이렇게 서러울 일인가. 그랬다.
여섯 번쯤 헌혈을 했지, 그런 어렴풋한 기억이 나서 요즘처럼 좋아진 세상에 기록이 있겠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역시, 헌혈한 기록을 알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하니 정말 내 기록이 있다. 여섯 번이 아니라 네 번이란다. 전혈 4회, 혈장 0회, 혈소판 0회... 최근 헌혈 장소 서울동부혈액원. 저기서 나의 찐한 피를 나누며 세상과 마지막 접속을 했었구나.
왜 난 철이 모자라게 되었을까. 이게 몸속의 철이 아니라 마음의 철과 합이 되는 지점부터 철이 부족해진 게 아닐까 괜한 뜬금없음으로 피식 웃었다.
당신은 철이 없어, 엄마는 철이 없어요. 없는 것보다 모자란 건 훨씬 나은 걸 거다. 모자라다는 건 앞으로 채울 것이 있다는 거니까.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