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칵테일파티

by 희수공원

미주는 출판사 북토크에서 그 작가를 만났다고 했다. 아이는 없고 이혼한 사람이라 했다. 슬픈 로맨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서 독자 반응이 좋아 출판사 쪽에서 주최한 북토크였단다. 거기에는 여성 독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미주도 하나였다고 했다. 북토크 마치고 책 사인회에서 무턱대고 미주가 명함을 건네주고 왔는데 그 작가가 연락을 했다는 거였다.


얼마나 감성이 예민한지 그 감성들이 소설에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졌는지 미주는 항상 입이 마르도록 찬사를 하곤 했다. 마음을 예민하게 공감해 주고 눈을 맞춰주는 그 작가에게 미주는 푹 빠져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가 가끔 메모해서 냉장고에 붙여 전하는 말로도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다는 미주였다.


미주가 부러웠다. 정말 눈물 나게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미주가 참 예뻤다. 사실은 아주 유명 작가가 아니면 근근이 자기 용돈 벌기도 힘들터였다.


미주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경제력이 되니까 괜찮아. 서로 행복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데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그래 그렇긴 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살면 되지. 경제적인 거야 누구든 능력이 되는 사람이 맡으면 되는 거지."


미주는 희서의 말에 큰 응원군이라도 얻은 듯이 신나 했다. 왜 자기 부모님이 그 작가를 탐탁지 않아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부모님 만나면 자기편 좀 들어달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희서에게 말했다. 희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자고 했다. 이쁘고 대견한 미주였다.


미주의 파티에는 미주의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참석했다. 마음을 나누며 돈독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불렀다는데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거기에는 동후와 희서도 있었다. 예쁜 칵테일파티였다. 우린 각자 먹을 음식을 사거나 만들어 갔다. 술만 칵테일 케이터링으로 미주의 집에 멋지게 바를 차린 것이었다.


테이블에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차려지고 각자 마시고 싶은 칵테일을 주문하여 한잔씩 들자 갑자기 집안의 불이 모두 꺼졌다. 미주와 그녀의 작가가 있는 곳에만 노란 불이 무대 조명처럼 켜졌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우리 둘은 오늘 이렇게 부부가 되기로 했어."

"우리 둘은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살기로 했습니다. 축하해 주시겠어요?"


친구들 모두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같이 환호했다. 세상에 이런 깜짝 결혼이라니! 결혼 전에 한번 만나자더니 이런 생애 단 한 번의 이벤트를 하며 소풍처럼 즐거워하는 미주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예쁘게 한껏 차려입은 원피스가 예뻤다. 봉싯 나온 배를 가리는 자잘한 하얀 안개꽃이 풍성한 하이 웨이스트의 멋진 예복이었다.


미주의 작가는 민성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미주와 성진은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다음 날 혼인신고에 동후와 내가 증인이 되어주었다.


양가 가족들과는 밖에서 조촐하게 식사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양쪽 부모님 모두 크게 반대하셨다고 했다. 미주는 그녀의 아빠를 흉내 냈다.


"아니, 지금까지 낸 축의금이 얼만데 미주 너 정말 이러기야? 이 고얀 녀석 같으니라고!"


하지만 미주의 부모님은 미주의 결정이라면 흔쾌히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분들이었다.


희서는 이 모든 미주의 축복들에 감사했다. 희서에게는 그런 부모님들이 안 계시지만, 제대로 건전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지도 못했지만 미주가 이렇게 멋지게 자기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벅찼다.


나도 어쩌면 결혼이란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준하가 어느 날 나타나 결혼하자고 하면 나도 미주처럼 내 방식의 결혼을 준하에게 말해야지. 그런 상상으로 행복했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미주의 인생과 희서의 인생은 당연히 다른 게 맞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색깔의 명암과 채도에 표현하지 못할 쓸쓸함이 항상 어슬렁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7화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