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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후의 세상

by 희수공원

준하가 떠난 후 3개월을 영혼 없이 떠돌았다. 그리고 나머지 3개월여 동안은 빛을 찾아 안간힘을 쓰며 느릿느릿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수업은 몇 주간 대체 선생을 구해 쉴 수 있었지만 대학 강의는 한 학기를 쉬었다. 모든 게 느렸지만 차분했고, 희서가 넘어지려 할 때마다 동후가 지탱해주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눈 맞추는 동안에는 마치 희서의 세상이 아닌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운 울타리 안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희서는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며 얘기했고 눈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공감했다. 슬픔 따위는 안중에 없는 천진한 모습의 아이들과 똑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없이 어둡게만 느껴져 집에 달려있는 전등을 모두 켜고 주방 식탁 위에 작은 촛불도 켰다. 이글이글 타오르며 오물거리는 불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해 한동안 앉아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촛불을 바라보다 보면 붉게 노랗게 파랗게 때로는 초록으로 흔들리는 뜨거움에 목이 메었지만 그런 뜨거움은 와인을 참아내도록 도와주었다.


한껏 배가 불러온 미주와 만나는 일은 희서에게 큰 기쁨이었다. 거의 주말마다 같이 브런치를 먹으러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희서의 집으로 미주를 초대해 작은 파티를 하곤 했다. 아가에게 좋을 먹거리들을 찾아내고 그걸 미주와 나누는 일은 희서의 그늘을 흐릿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던 한 날 미주가 툭 내뱉은 말에 희서는 갑작스러운 두통을 느꼈다.


“동후가 신학대학 기숙사에 있다가 중도에 나와 버렸잖아. 너도 알지? 동후는 어째 자기 미래에 대해 너무 충동적인 것 같더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깐!”

“뭐? 기숙사에 들어갔었다고?”

“그랬지. 어머나 너 몰랐나 보구나? 난 네가 제일 먼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 아마 너랑 제일 자주 만나고 있었을 땐데? 아닌가?”


동후가 119를 불러 같이 들이닥쳤던 그즈음이려나 하고 생각하던 희서는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느꼈다.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그럼 죽을 것 같은 친구 하나 살리자고 자기 미래를 포기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희서 자신이 어디에도 쓸모없는 민폐 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후의 속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며 결정했다던 그 미래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정말 있어서 지금 동후가 할 일은 신의 부름을 따르는 사제가 아니라 처절히 무너져가는 인간 하나를 구하라고 계시를 하기라도 했던 걸까.


희서는 계속 생각하다가 급기야 동후에게 만나자고 했다.


“준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동후는 기숙사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미주에게 들었다고 희서가 말하자 그렇게 말했다.


“준하가 사랑하는 너도 내가 사랑하기로 했어.”

“뭐… 뭐라고?”


희서는 갑자기 여러 개의 폭포가 위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서로 엉켜 굉음을 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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