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 가지 색 사랑

by 희수공원

준하를 사랑하는 동후의 마음은 어떤 걸까. 준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충만한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희서는 생각했다. 대학 때 동후가 준하를 바라보는 눈은 장난꾸러기 초등학교 친구의 그것도 아니었고 대학 동기로서 의리를 가득 품은 눈도 아니었다.


지긋이 미소를 짓다가도 통증이 지나가는 듯한 찌푸림으로 준하에게 마음을 향했던 동후였다. 그저 옆에만 있어도 가슴이 가득 차는 그런 기쁜 순간들의 모음이 동후만의 색깔을 지닌 사랑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화롭게 성장을 꿈꾸며 치유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하늘색의 사랑일 거라 희서는 상상했다. 희서가 지금까지 동후의 색으로 마음에 담고 있었던 우중충한 회색은 전혀 아닐 거라고 애써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준하가 여자였다면 동후가 뜨겁게 빠져들 수도 있었을까. 희서는 그런 유치한 생각까지 하는 자신을 보며 동후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후를 너무 속된 눈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머리를 흔들었다.


희서에 대한 준하의 사랑은 아마도 스카알렛 레드의 빛나는 주홍빛일 거라 생각했다. 준하가 희서에게 건넸던 주홍빛 슬립과 진주 핑크 빛을 가진 하얀색 실크 나이트 슬립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따뜻한 강렬함 그대로 서로를 향해 서 있는 것 같았다. 동후도 준하가 희서에게 준 사랑을 그렇게 보았을까.


주홍빛 슬립을 볼 때마다 준하가 생각났지만 정작 준하와 같이 있을 때 입었던 것은 흰색의 실크 슬립이었다. 스카알렛 레드의 주홍이 희서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미련이 여전히 희서를 더욱 외롭게 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준하가 사랑하는 희서를 사랑한다는 동후의 그 사랑이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누군가가 하는 말처럼 너무 상상 이상이라서 희서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었다.


준하만을 바라보는 물처럼 투명한 순수한 사랑일까. 희서를 보면서 준하를 그대로 투영하고 바로 그 상대가 되는 그런 사랑인 걸까. 준하에게서 희서에게로 향하는 과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그 과정을 사랑하는 그런 동후일까.


동후가 가진 세 가지 사랑의 색깔이 전혀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딘가 꼭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신비한 하나로 수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하와 동후와 희서, 서로를 볼 수는 없지만 그 향한 곳들을 감지해 내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대학 독서 토론 동아리 때 에로스의 정의와 현대적 실현에 대해 분위기 뜨거웠던 플라톤의 '향연', 집착적 광기나 되돌아오는 것에만 뜨거워지는 얄팍한 사랑에 대한 그 당시 세대의 고민이나 생각을 나누었던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근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동후의 사랑이 그런 것이라 추측했다.


동후는 준하와 희서가 여전히 닿지 못한 가장 차원 높은 꼭대기에서 둘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무조건 세속의 비린내 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동후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그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었다. 말은 쉬운데 실행하는 건 너무 어려운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럴 줄 아는 사람이 동후라 생각했다.


희서의 상실과 아픔을 사실상 돌보고 있는 동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희서는 난감했다. 그렇게 힘들여 들어갔던 기숙사에서 며칠 만에 갑자기 나와서 곧장 달려온 곳이 희서가 그녀 자신의 고통에 취해서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던 그곳이었다. 희서 또한 동후를 있는 그대로 그가 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희서는 멀어지지 않는 준하와 가까워질 수 없는 동후 사이에서 이상한 줄다리기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9화동후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