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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by 희수공원

"희서, 잘 있는 거야? 동후가 나중에 연락하랬는데 내가 못 참고 전화하는 거야. 나 결혼해! 너도 알지? 그 작가랑."

"오, 그렇구나. 축하해!"


거의 자동으로 튀어나온 축하한다는 말에 희서 자신도 어리둥절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동후의 말에도 불구하고 빨리 연락을 했으니 기특하지 않냐는 투의 미주는 여전히 명량하고 귀여웠다. 동후는 미주에게 희서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고마웠다.


비혼주의자였던 미주가 결혼하는 것이 축하할 일인지, 그 작가와 결혼하는 것을 축하해야 하는지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축하해 달라는 전화를 한 것이니 축하해 주는 것이 맞았다. 분명 그랬다.


"사실은 나… 아기 가졌어! 병원에서 쉬어야 한대서 준하 출국하는 데 나가보지도 못했네. 넌 어떻게 지내?"

"나야 뭐, 맨날 일상이 그렇지 뭐. 잘 지내고 있어."


사실은 잘 지내고 있지 못했어. 준하도 가버렸고 내 안의 생명이 스르르 떠나버렸고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고 와인도 내내 같이 아팠어. 붉게 그렇게 내게 온통 내내 들이부어져도 여전히 붉은 와인처럼 그런 아픈 멍이 잔뜩 들어서 말이야. 내 삶이 수세미 같이 엉켜서 지금 별로 살고 싶지도 않아! 그렇게 소리칠 수는 없었다.


미주와 통화하는 이 시간만큼은 목소리를 한껏 높여서 축하하고 들어주고 대답해 주는 미션을 잘 마쳐야 했다. 어쩌면 미주의 솔직하고 밝은 삶이 희서를 이 그늘에서 햇살이 드는 곳으로 끌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결혼은 내가 꿈꾼 대로 할 거야. 너도 궁금하지? 우리 완전히 새롭게 말이야. 곧 알려줄게. 결혼하기 전에 한번 만나자. 내가 다시 연락할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삶은 어떤 때 피도 눈물도 없다. 견딜 만큼의 시련이 아니라 견디지 못할 거면 무너지라는 듯 거대한 검은 파도로 덮친다.


미주야 축하해. 진심이야. 꾹꾹 눌러 속으로 한번 더 전했지만 눈물은 여전히 뺨을 타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위장으로 타고 내려간 떫은 탄닌의 무거운 와인은 금세 기분을 들뜨게 했다. 표정 주름을 끌어모아 웃어보기도 하고 와인잔에게 말 걸기도 해 본다. 느릿느릿해진 근육 가락들을 느끼며 밑도 끝도 없는 빈 허무에 마음을 담그고 눈을 감는다.


띠릭띠릭 현관문 디지털 도어록 소리에 잠을 깨보니 벌써 동후가 내가 웅크리고 잠들었던 흔들의자 앞에 서 있었다. 여전히 희서가 불안하대서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인데,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무작정 들어오는 동후가 거슬렸지만, 희서가 죽을까 봐 걱정돼서 오는 친구의 호의로 생각하기로 했다.


"미주가 연락했다며?"

"응."

"걔는 참... 내가 그렇게도 당부했는데."

"그런 당부하지 마. 사람의 뇌는 말이야 하지 말라는 건 각인이 더 잘된다니깐. 하하, 난 괜찮아."

"괜찮다면서 왜 이렇게 술을 시도 때도 없이 마시냐? 안 괜찮다고 시위하는 거나 같아."

"... 사실은 나... 너무나 안 괜찮아... 미안해."


희서의 흐느낌을 그녀 자신이 들으며 추하다고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희서가 한 발 멀리 떨어져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든 단 한 번에, 한 칼에 끊을 수 있는 것에 희서를 몰아넣어 견디는 힘으로 살아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는 의지가 살고 싶지 않다는 비굴한 초라함 뒤에서 끓고 있었다.


와인을 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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