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후가 희서를 안고 뛰고 있었다. 그의 팔을 따라 흐르는 또 다른 희서의 붉게 흘러내리는 죽음을 내려다보며 동후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희서는 가볍게 날아가고 있었다. 희서를 키운 세상에 생명의 온기를 내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준하를 보냈던 그날 그 공항의 공포가 냉정하게 다시 머릿속을 헤집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거의 매일 동후가 죽을 사들고 찾아왔었다는 게 생각났다. 어디서 들었는지 미역국도 먹어야 한다며 미역국 전문 식당을 돌아 돌아 사다 주곤 했다. 먹고는 바로 토해내거나, 먹을 거라는 다짐을 하고 동후를 보내곤 했었다. 병가를 냈던 학교에는 휴직계를 냈다. 이주쯤 여행을 가겠다고 하고 동후를 오지 못하게 했다.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었다.
"내가 네 말을 왜 믿었을까. 열흘이나 지나서야 문득 생각이... 이제 와서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어."
"혼자 있는 것은 그래 좋아, 그런데 술이 필요하면 그건 살 의지가 아니잖아. 포기하는 거잖아. 그러지 마. 그러지 마, 희서야."
"응..."
동후는 그 이후 매일 희서를 찾아왔다. 아니 감시하러 꼭 하루 한 번씩 들렀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시간은 상처에 서서히 딱지를 앉혔다. 밝은 낮은 잘 견디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질 때의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공포만 견디면 되었다. 그때마다 와인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두 달이 넘도록 바깥 외출을 하지 않았다. 날짜가 궁금해 달력을 보다가 문득 동후가 생각났다. 동후가 떠나야 하는 날이 꽤 오래 지나있었다. 카톨릭 사제가 되려면 외출을 하지 못하는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동후는 거의 매일 희서에게 오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죽만 먹으니 기운이 없는 거야. 오늘은 밖에 나가자. 곧 학교에도 다시 나가야 하니까 바깥공기도 익숙해져야지.”
일요일 오후의 늘어진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말에도 꼬박꼬박 전화하고 찾아오는 동후가 마치 습관이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게 이상했지만 너덜거리는 몸을 추스르는 데는 옆에 지탱할 누군가 같이 있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푸른 숲으로 한 껏 들어가 깊숙하게 자리 잡은 카페에 앉아 초록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새로워 보였다. 다시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넌 언제 가게 되는 거야? 기숙사 들어가는 날이 지난 거 같아서…”
동후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희서는 그 미소가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약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후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더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어. 지금 나에게만 집중하는 건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내가 사제로 살길 원하는 건지 아니면 현재 삶에서 뭔가를 피하려는 건지…”
“아, 그렇구나. 네 마음도 복잡할 텐데 나까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더 짐을 무겁게 했구나. 미안해.”
“아니야, 잠시 접어두고 나니까 요즘 마음이 편해. 오히려 너를 보러 오면서 더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그러니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희서의 눈을 맞추며 싱긋 웃는 동후가 무척 새로웠다. 그리고 많이 고마웠다.
“수프가 식기 전에 조금 더 먹어봐.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시금치로 만든 거래.”
이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가 희서가 살아야 할 전체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묵직한 슬픔은 오래가겠지만 찌르는 듯한 잦은 통증은 줄어들 것 같았다. 동후는 든든한 좋은 친구였다.
“참, 근데 미주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 궁금하네.”
희서는 당황하는 동후의 표정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