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어디선가 섬집아기 노래가 들려왔다. 아기가 곤히 자고 있구나 내 아기 내 아기가. 손을 뻗어도 아기는 조금씩 조금씩 꼬물거리며 멀어져 갔다.
아침에 뜨는 해는 가장 신선하고 찬란한 빛을 뿜는다. 따갑게 얼굴에 닿는 빛줄기에 잠에서 깨면 생명의 무게가 줄어버린 부피를 침대가 고스란히 느끼는 것 같았다. 현실을 바로 보라는 듯 매몰차게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네가 가볍다. 네가 더 가엾다. 흐르는 눈물은 침대로 스며 침대도 맘껏 슬퍼하고 있었다.
심장을 감싸 쥔 엄마가 희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괜찮아. 심장이 아파도 네게 갈 수 있어. 소복소복 모래 속에 발이 빠져도 쉬익거리는 바람이 막아선대도 엄마는 네게 항상 가는 중이야. 엄마가 희서에게 말했고 희서는 그 말을 할 그녀의 생명을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러고는 더듬더듬 손 닿는 곳 와인병을 들어 마신 후 다시 잠이 들었다.
누군가 쾅쾅 너무 시끄럽다. 꿈에는 문이 없었다. 놀라 두리번거리다 소리를 흐릿하게 느꼈다.
"희서! 신희서! 문 좀 열어봐...!"
분주한 소음에 정신을 모아보려 애썼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카알렛 레드의 빛나는 주홍 불빛이 희서를 내리쬐고 있었다. 그 황홀한 빛을 따라 계속 걷고 있었다.
준하에게서 온 그 레드의 노곤한 늘어짐을 따라 희서의 몸을 타고 흐르던 뜨거움이었다. 차갑고 잔인한 냉기가 흐르는 희서를 못 견뎌내고 떠나버린 그 주홍빛 영혼이 어서 오라고 희서에게 계속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누군가 희서의 생명을 확인하는 소리가 났다. 목이 간지러웠다. 누구야? 손목을 잡고는 한참 있다가 나가버렸다. 꿈에도 희서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으니 더 살아야한다. 무의식 속에 쭉 뻗은 손에 와인병이 잡히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희서의 팔목을 아프도록 힘주어 잡았다.
"아아아악...!"
침대 모서리에 엎드려 불빛을 보았다. 포근한 노랑의 은은함이 오랜만의 현실을 느끼게 했다. 작은 원목 테이블에 롱체어 두 개가 삐딱하게 기대고 있다. 낯익은 희서의 공간이었다. 그 바로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준하...?"
희서는 뜨거운 어지러움에 다시 침대로 널부러졌다. 이상하게도 그 땐 와인을 마시지 않고도 잠을 더 잘 수 있었다. 누가 온 거지?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해. 곧 일어날 거야. 준하 맞지?
늦은 밤 깨어난 내게 차가운 얼음물을 건네준 건 동후였다. 한 모금으로도 온몸을 다 얼릴 것 같았다.
"언제 왔어?"
"아까 오전에..."
시계는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트로 몸을 감고 일어나 앉았다. 시트 안의 건조하게 말라버린 알몸이 초라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얼마나 그녀 자신을 가둬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제대로 살고 싶어 돌아오려는 안간힘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