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서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위에서 계속 떨리고 있는 핏기 없는 자신의 하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항 주차장에서부터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에 절절해졌지만 그건 희서 사정이었다. 출국장 앞의 준하는 벌써 동후와 끌어안고 이별하는 중이었다. 친구가 아니라 마치 애인처럼 보이는 둘의 모습이 희서의 눈에 가득 찼다. 준하가 손을 흔들었다.
"왔구나! 근데 왜 이렇게 말랐니? 오늘 더 그런 거 같네."
"하하,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가? 난 괜찮아!"
세상 최고로 신나게 살고 있는 사람인 것 마냥 한껏 업된 목소리로 준하에게 인사를 했다. 같이 했던 시간을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가지고 가라. 아무리 처절하게 속으로 외쳐도 남은 건 초라할 테고 우울할 테고 조용히 가라앉아 허무한 시선이 되겠지. 네가 가는 길만큼은 찬란했으면 좋겠어. 진짜 그랬다. 준하가 그러길 희서는 간절히 바랐다.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이 그리 넓지도 않으니 어디에 있은들 어떻겠냐! 난 이제 시작이야. 잘 해내고 싶어. 너희들과 이렇게 이별하게 될 줄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말이야."
"뭘 그렇게 슬픈 척을 하고 그래. 넌 잘 해낼 거야. 너 자신을 믿으면 돼."
희서는 목소리를 더 밝게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말 모두 잘 살 거야. 안녕. 잘 가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며 현기증이 났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로 준하를 보내고 싶었다.
준하가 출국장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두통이 몰려와 잠시 벤치에 앉았다. 동후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난 괜찮아. 아침에 마신 커피가 너무 진했나 봐. 속이 좀 울렁거려서..."
앉아있는 곳에서 주차장까지만 가면 된다. 그럼 스마트 시동 버튼을 힘껏 눌러 자동차를 깨운다음 기어를 드라이빙에 두고 왼발로 힘껏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면 되는 거야. 미끄러져 움직이는 차에게 그다음을 맡기면 곧 집에 도착하게 될 거야. 희서는 창백하게 벤치에 앉아 어서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후를 먼저 보내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가 너무 길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나를 뿌리치는 에스컬레이터를 느끼며 포물선으로 떠오르는 하늘을 보았다. 다리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질척함에 기분이 나빴다. 희서의 영혼을 남김없이 가지고 가려는 불 같은 뜨거움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집에 다 온 거야? 깜깜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꿈을 꾸었다. 저편 아득히 누군가 나를 불렀다.
"희서야! 신희서! 희서..."
동후가 푸른빛의 표정으로 희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개 커다랗게 박힌 천장의 밝은 전등 때문에 동후 얼굴이 퍼져 흐리게 흩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희서가 본건 동후 팔소매의 붉은 핏자국이었다.
모든 게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뒤집어쓴 병원 시트 안에서 희서는 자신을 빠져나간 생명의 혼을 애도하듯 오랫동안 배를 감싸 안고 오열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서를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