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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by 희수공원

단 한번 같이 했던 그 과거로부터, 단 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리운 과거가 아니라 희서가 가꾸며 항상 바라볼 수 있는 현재로 온 과거가 경이로웠다. 한 사람은 ‘희서’라는 세상을 인정하며 사랑하고 있으며 다른 한 생명은 ‘희서’라는 세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안전하게 자라날 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희서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랑, 간절히 희서에게 매달리며 희서를 원하는 사랑이었다.


미주랑 준하, 동후는 한층 밝아진 희서의 모습을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희서에게 그런 기쁨의 표정이 가능한지 몰랐다며 미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분명 좋은 일이 있는가 본데 뭐지? 뭐야, 응? 로또라도 된 거야?”

“희서가 로또에 저런 기쁜 얼굴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아마도 사람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미주의 호들갑에 맞춰 동후가 그 답지 않게 들떠 추측했다. 준하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희서도 역시 홍홍거리며 볼만 불그레해져서 웃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이미 처음부터 굳게 마음을 먹었으니 들뜨고 기쁜 마음을 감지하고 같이 흥분하는 친구들에게 웃음으로 대답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것도 없었다. 미주가 준하를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준하와 희서를 순서대로 가리키며 눈을 흘겼다.


“너희들 무슨 좋은 일 있는 거지? 그렇지? 뭐야, 결혼이라도 한다는 거야?”


희서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깨를 으쓱 하자 동후가 그럴 리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준하는 그런 생각 아닐 텐데!”


동후가 아차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희서를 흘깃 쳐다보았다. 동후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 계속 뭔가 인정해서는 안될 것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직장도 그렇고 아직은 결혼해서 정착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뭐, 그런… 그냥 내 생각이야.”


갑자기 준하가 벌떡 일어나자 미주와 동후가 어리둥절해하며 준하를 올려다보았다.


“지난번 디자인 공모전 대상 탄 거랑 관련해서 내가 추가 작업을 해서 유럽에 제안서를 몇 개 보냈었어.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어. 같이 일해보자 해서…”

“갈려고?”

“갈 거야?”


미주와 동후가 동시에 목소리가 커졌다. 준하가 희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희서가 같이 가면 좋겠어.”


희서는 그 순간 ‘같이’라는 말보다 준하가 ‘좋겠어’라고 말한 데서 희서를 배려하지 않은 아쉬움을 느꼈다. 공개적인 과한 자신감은 개별적인 무시나 무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준하는 몰랐을까.


“생각해 볼게.”


준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희서를 돌아보았다. 희서는 준하의 눈을 슬프게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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