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살이
곧은 정리를 위해 필사를 합니다. 똑같은 듯해도 결국은 변하고 있는 고운 일상들, 바르게 세우고 싶은 마음, 풀풀 날리는 먼지를 불어 내고자 필사를 합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제가 특히 사랑하는 부피와 무게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저만의 정리입니다.
베껴 쓴다는 것을 표절과 같게 본다면 그건 가장 원시적이고 기술적으로 바닥을 긁는다는 것입니다. 생각, 사고, 사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수치스러움의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지요. 세상에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번쩍이는 천한 싸구려 장신구를 다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적 압력에 치어 꾸역꾸역 도표의 숫자 기록을 위한 도둑질입니다.
한 단어 단어, 아름다운 문장들의 여운이 길 때 그들을 한번 더 종이에 새기며 필사를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와 대화할 때 또는 글을 쓸 때 그 느낌을 기억해내고 싶다면 이런 필사도 가치 있는 기록이 됩니다.
옮겨 적으며 지금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눈을 밝게 가슴을 깊게 하고 즐거운 필사를 할 수 있어요.
종이에 또는 컴퓨터 스크린에 떠있는 단어, 문장이나 단락이 가슴에 툭 떨어지며 울림이 되면 그건 단순한 베껴쓰기가 아니라 삶이 됩니다. 가슴을 저미는 시간이 됩니다.
데미안 원서 책등부터 필사를 시작했어요. 우연히 펼쳐 몇 단락 집중하며 눈길을 주던 토마스 만의 서문에 울컥해 가슴에 안으며 책등의 DEMIAN Hermann Hesse, 회색 '데미안'과 그걸 쓴 '헤르만 헤세'의 검은색으로 강조된 이름을 눈에 담았습니다.
회색과 검은색. 무채색의 지금, 저의 지금, 제가 사는 현재의 이 시대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로 가슴을 파고듭니다. 여태껏 제대로 속해있지 않았던 현재의 절박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느껴야 할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두렵게 마음속에 정체합니다.
돈을 베끼고 오염된 힘을 베끼고 베낀 주먹으로 다시 입을 막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할 사람들은 가슴을 태워 재로 날리고 진지함을 가장한 가벼운 입만 오물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울상인 채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저도, 제가 따르던 리더들도요.
그렇게 데미안 책등의 글자는 색깔의 가치와 현재 제 처지에 회초리질을 합니다. 나약한 저의 마음에게 똑바로 보라 호통을 칩니다. 그렇게 이어가는 시간들이 매일의 루틴으로 하루 단 십 분간만 단호하다가 담배 연기처럼 희석되어 흩어집니다. 부끄럽습니다. 얹힌 목소리마다 겹겹으로 파묻히는 진실입니다.
그렇게 바깥 세계도 무겁지만 사실은 제 안의 폭풍이, 다스려야 할 첫 번째 과제일 겁니다.
최근 필사한 문장은 it could be dreamed, anticipated, sensed였습니다. 제가 꿈꾸고 기대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현재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문제들이 떠올랐습니다. 신체적인 어려움부터 심리적인 나약함까지 다시 한번 바라보고 눌러도 보고 어떻게 건너갈 것인지 마음이 바쁩니다.
싱클레어가 간절한 도움을 바라는 편지를 썼지만 끝내 데미안에게 부치지 못합니다. 스스로 깨어나야 합니다.
I am enveloped in darkness.
It looked foolish and senseless.
막막하게 갇혀 스스로를 자책하는 두려움이 몰려오는 표현들을 곱씹습니다. 때론 이런 의미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내곤 합니다. 깨고 찢고 움직여야 변화가 있을 겁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면 이젠 위로 올라가는 일만 남아있는 거니까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니 당연히 두렵습니다. 누가 그 길가에 서 있을지 모르니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이 초롱이며 때론 노려보며 저를 향해 다가올지 몰라 심장이 멎을 지경입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김없이 겪는 이 뜨거운 두통, 압도되지 않으려면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그럴싸하게 과거를 베끼지 말고 지금을 크게 세워 헐렁헐렁 여지를 두는 겁니다. 빡빡하게 융통성이 부족할 땐 스스로 복제하는 투명한 벽과 창에 의지합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투명한 방 한 칸씩 분양합니다. 창을 열면 두 칸이 짝이 되고 서너 칸이 모여 그룹이 되고 결국 서로의 세상을 넓혀주는 관계가 될 겁니다.
저는 그 방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고 방향을 가르쳐주며 조용히 때론 뜨겁게 옆에서 동행하는 그런 사람을 꿈꿉니다. 꼬리가 뭉텅 잘려나간 2월의 남은 시간들을 차곡차곡 챙겨야겠어요.
그런 동행과 챙김을 단단히 도와주는 저의 첫 루틴, 배우며 깨달아가는 필사(筆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