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안갯속을 헤매며 희서는 희미하게 솟아오른 기내 좌석 등받이 모퉁이를 하나씩 잡으며 화장실에 갔다. 문을 열며, 번지는 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거울을 보았을 때 희서의 모습이 물속으로 물감이 퍼지듯 울렁거렸다.
'너무 피곤한가 보구나.'
한참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다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밝은 곳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어둠이 더 어둡게 느껴졌다. 통로에 서서 양쪽 손 끝에 닿는 좌석 안에서 곤히 자는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상한 공포가 밀려왔다.
'May I help you?'
좌석 꼭지를 있는 힘껏 잡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 희서에게 승무원이 다가와 도와줄지 물었다. 희서는 어서 자리로 돌아가 앉고 싶었다.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는 길이었다.
'Yes, please. I can't see. Can you help me come to my seat?'
승무원의 팔을 잡고 자리로 오는 내내 두려움에 몸이 떨렸지만 속으로는 계속 진정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한 여행 일정 때문이야, 와인도 마셨잖아, 피곤한 데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래.'
희서는 도착 전 기내 식사 시간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후가 깨우는 바람에 인천 공항에 거의 도착해서야 일어났다. 눈을 뜨는 게 겁이 났지만 어쨌든 떠야 했다. 다행히도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에서 몽롱하던 것들의 실루엣이 여전히 파스텔처럼 흐릿했지만 충분히 혼자서 기내 통로를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거봐, 너무 피곤해서 그렇다니까.'
다행이라 생각했다. 동후가 희서의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했지만 긴 비행시간으로 지쳐 그런 거라며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한국에 도착하면 병원에 가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생각만 하다가 촘촘한 일정으로 쌓여있는 일에 치어 나중에 가보기로 했다. 비슷한 증상이 다시 있으면 그때 병원에 가야지 하며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는 증상에 너무 예민을 떠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가정의 달 5월에는 초등학교 행사가 많았다. 학부모를 초대한 시범 수업도 있었고 교직원과 학부모 간담회가 잘 진행되도록 돕는 일도 해야 했다. 일주일에 두 번만 수업을 하는 기간제 특강 교사였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 행사를 남일처럼 두고 칼퇴근을 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학부모가 참석하는 행사에는 언제나 학교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언제 어떤 곳에서 불평이 터져 작은 일이 눈덩이 같이 불어날지 모르니 모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였다. 외동인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집착과 광기의 부모도 늘어나고 있었다. 자는 아이를 건드려 깨우면 성희롱이 되는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