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셀프 구인 중

다정하게

by 희수공원 Mar 25. 2025
아래로

불쑥불쑥 호기심, 참지 못한다.


마음먹은 대로라면 가만히 앉아서 없앨 물건들의 목록이나 탈퇴해야 할 아이디나 비밀번호에 고심해야 하는데 열린 문이면 용기가 나기도 전에 이미 들어가 있다.


사람들은 그게 인생이라며 그래서 산다며 웃고 만다. 살지 않아도 될 곳을 하나씩 추려내고 싶은데 더하기를 하고 있다. 비우려고 더한다는 궤변을 깔고 앉았다.


쓸 글, 읽힐 글, 글을 글답게 세상에 내놓고 싶은 야망이란 걸 가져보려고 하는데 이내 절망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쓰는 사람은 엄청난데 읽는 사람은 없더라. 그러니 우리가 읽을까. 그렇게 서로 다정해지자는데 넘어갔다. '다 썼어'가 아니라 '더 읽고 싶어'로.


감각의 사용이 특이한... 그래서 외로운 건가?

너 만의 코드가 있구나... 아, 어렵다는 뜻?

내면이 드러나는 방식이... 역시 난해하다는? 

노골적으로 질척거리는... 그런 삶이 습관이어서?

그로테스크가 배인... 기괴? 엽기라고? 자유 아니고?

문단을 잘 나눠봐... 아, 못 배운 티가 확 나지?


열심히 배우고 있다, 세상을.

배우고 고치고 다시 읽고

새롭게 듣고 읽고 다시

고치고 읽고 쓰고...


그러다 내 가슴을 구멍 내는 말이 빠르게 지나간다.


'네 글은 시 하고 소설하고 사이인 거 같아.'


절망은 밖이 훤히 보이는 그물 안에 묶여 흘리는 눈물과 똑같은 색깔일 것이다.


소설을 썼는데 소설로 읽히지 않고 시를 썼는데 시로 전해지지 않는 막막함. 부끄러움. 벽.


끝까지 견뎌볼 거야.


살아야 하므로 쓰고, 읽으면서 하루를 소통하는 삶이 우연의 고리를 엮어가며 촘촘하게 자신을 응원하는 거라서 그렇게 해야 하는 거다.


나를 구인하기로 했다. 나 같은 사람을 구하기로 했다.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의 크기가 비슷한 나에게 손짓을 해보는 거다. 작은 응원가를 내 귀에 부르는 거다. 따뜻한 입김이 내 귀에 닿을 때까지.


내가 읽은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걸어 줘야지.

나를 원하는 사람들만 클릭을 하게 해야지.

무지개 색깔만큼 비밀코드를 심어 둬야지.

미리보고 쌩 달아나면 기쁘게 안녕해야지.


걸어 들어간 큰 보폭만큼 나를 정성껏 모두 주고 되돌아 나올 때 서로에게 기쁜 인사와 바람을 전하게 되기를.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닌 내 구역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모자라고 못 미치는 것의 순수와 희망 같은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같음 속 다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