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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손진오 씨

그리움, 그 위안에 겨워

by 희수공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녀가 '손진오'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2년 넘게 분주하게 들락거리던 그곳에서 나는 손진오 씨를 처음 새롭게 다시 만났다.


왜 하필 그 생각이 났냐면, 지금 내 바로 앞 두툼한 도자기 머그컵 안의 커피가 금가루를 듬뿍 뿌린 가격이어야 함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옆에 회색의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에서 젖은 행주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다시 꽂기 싫은 포크를 놀랄 만큼 비싸고 초라한 맛의 덩어리에 움푹 담갔다. 얼그레이 향을 다 흡수해 버렸는지 무미의 푹신함이 너무 건조해 놀랐다. 지금 건조한가, 나.


이년 전 겨울의 초입이었다. 녀의 손진오가 내게 커피를 안긴 그날 나는 온 피로가 씻기는 듯한 청량감에 몸과 마음이 다 뜨거웠다. 열 시간쯤의 산행 후 첫 카페인의 자극은 천국이었다. 게다가 과카몰리를 잔뜩 올린 양상추 샐러드, 토핑으로 올라가 있던 러스크 조각까지. 천국을 달렸다.


하지만 언제나 이별은 갑작스럽다. 문득 들렀던 그곳에 손진오 씨가 없었다. 청양고추 쫑쫑 넣은 백짬뽕 국물이 손진오 씨의 커피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내 눈물도 갑작스러운 충격에 말라버려 없었다. 없던 것이 천지가 된 내 마음은 그날의 제주공항을 텅 비게 했다. 이제 더 이상 커피를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멍하니 서서 지나간 어느 시간에 박혀 있을 커피 향을 되새김한다.


문득 떠나 닿은 낯선 이곳에서, 먹어본 커피와 케이크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부담스러운 맛을 이겨내야 할 때, 그녀의 손진오가 김포공항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지금 마시는 커피가 맛의 부재를 알리니 맛을 담아야 할 머그 허리가 잘록한 것에 쓰디쓴 감사를 보낸다. 가늘어지지 않았다면 더 담겼을 커피에 안도한다.


'쉬'폰의 앞 자에 '시옷' 하나 끼워두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쉿! 황소의 그것인지 닭의 그것인지 말할 수는 없다. 단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어른이 되려면 그렇다.


오늘도 물구나무 선 손진오 씨가 내려주는 저렴하고 맛난 커피를 그린다. 다음 여행 시작할 때 다시 만나요, 손진오 씨!


지금 이곳 여수에는 없어도 좋지만 다시 들를 김포공항에는 오래 머물기 바라요. 오늘 내내 비바람이 세찬 이곳에서 안부 전해요, 손진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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