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詩로부터
다소 촌스러운 초록색 표지의 김수영*을 읽고 나서 온전히 덮지 못했다. 강아지의 늘어진 귀 끝처럼 페이지를 접어두고 한 부분에 머물며 마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루틴으로 다시 한번 더 안고 얼마간 살지 그냥 덮을지 방황하던 중이었다. 만지작거리며 의미를 받아내려는 듯 바짝 건조해지고 있었다. 문득 친구가 한 구절을 가리킨다. 네가 쓴 글처럼 하나도 이해가 안 되네.
바로 그곳이 내가 오래 머물던 곳이었다. 이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 방식대로 떠안는다.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이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 김수영의 '구슬픈 육체' 중에서
Though
I did not turn on the light
to desperately find
nor to see disappearing itself
still
the light awoke
without a chance to realize
어떤 순간, 생각과 행동과 기억이 헝클어진 사이에 무의식적 현상이 세상을 밝힐 때가 있다. 그런 당황이었던 것 같다.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어눌한 느낌이다.
오랜 부재를 갑작스럽게 들여다보며 확신할 수도 없는데 밝히라 빛으로 떠밀린다. 그런지 아닌지 헤아리지 못하는 건 여전히 기억이 현재이기 때문이다.
뒤꿈치에 가득 힘을 주어 바닥과 겨룬다. 그러나 이미 불은 켜졌다.
가야 할 길은 가게 된다.
마음에 심어둔 기대라 그렇다.
*: 김수영 #金洙暎 디 에센셜, 민음사, 2024
**: 부분한영번역 by 희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