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숲이 모자라 숲을 향한다. 인공의 산소를 마시던 거리와 공원을 지나 원래 그 숲이었던 땅을 밟는다. 그런 신선한 갈증을 다독이는 곳에서 다시 고유한 색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다채로운 사람의 색깔을 잠시 내려두고 햇빛 닿는 곳마다 생명이 자라는 곳에 간다.
가야 할 길을 예감할 때 그게 맞는지 마음을 고르고 싶을 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끝길에 선다. 부산한 바람도 잠시 쉬어 고요한 숲에서 더 차분하게 숨 쉬다 온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쯤에서 돌아와야 하는지 숲은 그 길을 알고 있다. 깊이 한껏 받아들이며 쌓였던 그늘을 한 겹 씩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지난 호우주의보에 한없이 방황하며 떨던 나무들이 이제는 겨울 준비를 하느라 그간 끈끈했던 매듭을 푼다. 생명을 위한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매달리던 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아는 자연은 조용한 깨달음으로 곁에 와 선다.
두려움을 피하려 읽으며 그었던 책의 밑줄도 사라지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언쟁의 꼬리가 희미해지고 의외의 순간으로 화해를 청한다. 밟히는 검은 돌 위에 피어 앉은 이끼를 보며 감싸는 온도를 읽는다. 한 때 끓었던 부딪힘은 다정한 바람이라 불러도 좋겠다는 온유한 마음을 숲길에 놓아둔다.
거칠게 파인 웅덩이를 만나면 긴장으로 마음이 울렁인다. 돌아갈 것인가 첨벙 지나갈 것인가. 돌아가려는 마음에 기억이 따라온다. 길에 늘인 시간이 여유를 허락한다. 지금까지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곱씹으며 겪는 감정의 파도, 그 너머 얼마간의 짧은 평온, 그리고 다시 겪는 부서짐들...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새겨진 과거와 지금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으로 잠시 선다. 부딪히기 전 긴장은 삶을 살아내는 힘이라 생각하면서도 괜히 작아져 뒷걸음치던 비겁한 순간들이 서 있는 시간을 채운다. 어떤 변명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곱씹으며 다시 걷는다. 살아온 만큼 단단해질 수 있을까.
돌아 내려오는 길이 기대만큼 쉽지 않을 때 지금껏 게을렀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극복해야 할 자잘한 것들에 불평하거나 저항하는 에너지를 쓰기보다 이성을 밝혀 의지를 실현하려 애써야겠지. 그렇게 지탱한 시간들이 지금을 만들고 아무도 모를 미래를 용기 내 마주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 숲에 그런 나의 의지를 가득 채우려는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들기 위해 내 안에 숲을 흠뻑 담아 오는 것이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은 숲을 들어설 때의 나와 다시 동행할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