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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해도 괜찮아

[책] 애도연습 by 정혜신, 창비, 2024

by 희수공원

'문득' 떠오르거나 '문득' 깨닫거나 갑자기 말머리를 숨겨야 할 때 돌아서서 멈춘다. 그런 '문득'을 생각하는 사이에 끼워 넣으며 아끼며 글을 읽는다. 길을 떠나다 집어든 작은 책이었다. 그래, 그랬다,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목 놓아 울다가 집안이 무너진 경우는 못 봤어도 제대로 울지 못해서 집안이 무너진 경우는 많이 봤다 (p.22)'는 단지 집안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관계의 시초로부터 바라보아야 하는 중요한 방향이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웃고 싶을 때, 기쁠 때, 어떤 말을 해도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사회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다면 그것이 치유와 평안을 이끄는 사회 안전망이라는 정혜신을 읽으며 주위를 다시 들여다본다.


5.18이 남긴 여전한 깊은 상처, 세월호로부터의 큰 슬픔,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불안전한 사회 시스템, 해고 노동자들의 절망, 상처와 슬픔을 정치화하고 자신의 안위에만 골몰한 위정자들 앞에서 얼마나 참담하고 부끄러웠는지 잊지 말자 새긴다.


자신이 직면했던 죽음의 그늘로부터 사회와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어두운 그림자까지 정혜신은 차분하게 슬픔과 고독의 충분한 극복 상황과 시간에 대해 말한다. 우리 사회는 힘을 따라가고 물질적 욕망에 질주하느라 바쁘다. 사람을 바라봐주고 슬픔을 보듬어주는 긴 여정에 소홀하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슬퍼 흘리는 눈물이 가볍고 사소하게 치부되기도 한다. 꽃 같은 수많은 생명들이 스러질 때 절망하며 오열이 지속되어야만 했던 그런 시간들이 이제는 그만하자는 식의 차가운 시선에 묻혀 끊긴다. 겉으로 잠잠한 길을 걸으며 우리 사회는 더 거대하게 다가올 후폭풍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실망으로 멀리하고 싶은 관계들, 죽이고 싶은 상사, 끊고 싶은 부모, 절망을 자해로 풀어야만 하는 아이, 감추어야 하는 죄의식에 고통받는 영혼, 끊이지 않는 분노로 괴로운 피해자, 자신의 위엄을 지키고자 선택하려는 죽음을 이기적으로 보는 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 모두 풀어야 할 멍들고 부푼 매듭을 견디며 산다.


가식의 평안을 위해 무언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상으로 보이는 기이함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 앞둔 사람들, 슬픔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에 대해 마주하며 '애도(哀悼)'가 필요한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새긴다.


사회적 규범의 애도가 아니라 개개인이 각자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충분한 애도 시간이 허락되는 곳을 꿈꾼다. 가족의 슬픔과 마주하며 친구의 절망과 마주하며 피해자의 분노와 마주하며 우리 모두가 결국 맞게 될 죽음을 준비하며 여한이 없는 그런 시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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