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고 닫으며 다시

막 지나 온 시간의 숭고함을 새김

by 희수공원

나무늘보를 좋아해서 'sloth lover, ' 피자를 좋아해서 순대를 좋아해서 콩자반을 좋아해서 아이들은 'pizza'가 되고 '순대'를 내밀고 '콩ja반'을 담는다. '독거노인'이나 '아종강하고싶다, ' '동굴'이거나 '아리아나그란데근육' 같은 쓸쓸하거나 부조리스럽거나 반어적인 별명은 더 마음에 남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의 연합이나 경험들이 엮여 더 강하게 장기기억화한다.


2025학년 신입생 나무늘보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손을 들고 느릿느릿 웃으며 베일 듯 예리한 질문을 한다. 긴장을 하면서도 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엔돌핀을 맛본다.


'Argument Ad Populum과 Bandwagon 오류의 차이는 뭔가요?'


수업 전 교재를 훑어보다가 둘의 논리적 정의와 예가 부족하다 느꼈었는데 역시 학생들의 질문은 옳다. 논리적으로 가능한 미묘한 차이에 대해 질의응답 방식으로 토의하며 나누고 나면 학생들 스스로 그 구체적 예를 들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


별명에 따라 대강의 질문 반응 방식이 예상되어 즐거움이 된다. 별명을 심리적 용도로 쓰려고 만든 건 아니다. 내가 공부할 때 성적 이의신청을 하면 세부 점수나 그 점수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응답해 준 교수는 거의 없었다. 당돌하고 건방지다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게 나의 큰 불만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내 학생들의 성적을 모두 공지한다. Z 세대(Gen Z)에게는 합리성과 공정성이 기본이 되면 수업 내 팀프로젝트도, 예고 없이 해야 하는 즉석 발표도 서로 신뢰하며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두 학생은 예상치 못한 태도로 나를 긴장시킨다. 학기 초부터 한 학기에 몇 번까지 결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거나, 다른 학생이 한 워크북 과제 페이지를 그대로 사진 찍어 자신의 것처럼 제출하거나, 진료의뢰서를 위조해 내기도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당황에 무표정으로 한참 그 지점에 머물며 느끼는 슬픔이 분노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들 뒤에 서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배워왔을 그 부정한 부스러기들이 만연하다.


마지막 수업의 뜨거운 인사들을 기억한다. 특히 신입생들 사이에서 졸업 필수 학점을 이수해야 했던 4학년 학생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의 마지막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말에 의미를 크게 두고 산다. 여한이 남지 않도록 나를 모두 주고 난 그 '마지막'으로 떠나가려는 바람이다. 내가 나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그 마지막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모두 잘 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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