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픽션] 매일매일 다른 부위로 태어나
신사역 출구로 나왔다. 수많은 차들이 분주한 대로변에서 바람을 맞으며 몸을 떨었다. 한기가 아닌 공포다. 공포도 한기의 일종이던가.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니 움직여 내딛을 곳이 없다. 고개를 들어 저곳 어디든 전화를 해야 이 신사역을 제대로 빠져날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늘은 키이라 나이틀리로 해주세요. 그녀의 눈빛도 똑같이 빚어 주세요. 얼마나 누워있어야 하나요? 오늘은 옆으로 세울까요? 거꾸로 서 있어야 눈 빛이 제대로 나올까요? 오만과 편견의 그녀 말고, 어톤먼트의 눈빛이 좋겠어요. 오늘은 제가 그렇게 허구의 눈빛으로 유혹을 해야 하거든요.
어젠 고마웠어요. 키이라 성공이에요. 오늘은 루 살로메로 주문할게요. 니체와 릴케를 모두 가진 그녀처럼 저도 한꺼번에 가질 사람이 둘이어서요. 하루 반나절씩 분위기 다르게 오락 가락 할 수 있도록 피부색은 버튼 하나로 변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버튼은 손목 아래 파란 정맥이랑 같은 색으로 혈관 옆에 넣어 주세요.
심장은 루 살로메에 가장 가깝게 뜨거운 오렌지 색으로 해주세요. 아, 허리는 그냥 두고요, 가슴은 좀 부풀려 주세요. 실리콘 말고, 공기로요. 내일은 누가 되고 싶을지 모르니까 바꾸기 쉽게 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이번 주에는 카드 두 개로 만족할게요. 이 카드로 다른 부위를 할인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곧 또 봐요.
딸아이를 10분간 기다리며 갑작스럽게 몰려온 무서운 공포에 7번 출구 앞에서 불안하게 서성댔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면 어떤 건물이든 들어갔을 것이다. 성형외과의 간판을 훑어 고르며 아마도 난데없는 충동에 어느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나는 삼일째 되는 날 누군가가 만들려다가 불량이 된, 이름 없이 버려진 카드 주인이 아닐까. 공포...
다시는 신사역에 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