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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Aug 03. 2017

여름을 나는 어른들에게

김애란,《바깥은 여름》


건너면 돌아갈 수 없는 길

반가운 신작,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은 우리가 잊게 되는 바깥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소설의 문장들은 쉽게 읽히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지나온 문장들에 눈길이 머문다.

단편들은 거의 '주변'의 인물을 그린다. 어떤 이들은 중심에 속하고자 평범한 속물이 되어가고, 어떤 이들은 그 조차 허락되지 못해 영영 일상적 행복을 잃어버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길을 건넌 이후이다.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건너편〉 115쪽.
- 그죠? 그게 젊음이지.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안 그래요, 이 선생?

〈풍경의 쓸모〉 163쪽.

작가는 그 건너온 길에 대한 낭만을 과장하거나, 속물이 된 어른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어른이라는 존재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임을 기억하도록 그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리고 그렇게 건너온 길들은 그대로 흔적이 되고,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에서 돌출되고야 만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중략)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가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가리는 손〉 214쪽.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렇게 빵하고 터져 버리는 과거들을 쌓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소설들은 그게 그렇게 쉬울 리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아이폰의 '시리'처럼 어떤 질문에도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예의를 차릴 수 있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바깥은 여름》의 단편들은 그 쉬울 리 없는 일들을 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 또한 말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인물들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고, 동시에 비슷한 이들이 생각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표정을 알 수 없는 시리의 캄캄한 얼굴 위로 지성인지 영혼인지 모를 파동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시리는 무척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인간에 대한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38쪽.


헤어지는 어른들

지난 작품들을 생각해보아도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엔 유독 '어른'이라는 명사를 풀어내는 문장들이 많다.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미처 담지 못한 의미들을 작가는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쓸쓸한 문장들로 위로한다.

어른들은 필연적으로 몇 번의 '헤어짐'을 경험하게 되고, 이별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삶의 깊이가 달라진다. 헤어짐이 만들어 내는 슬픔은 계절의 차이와 비슷하다. 소설의 언어를 빌리자면 바깥은 여름인데 하얗게 눈이 쌓인 스노볼 같은 갇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어떤 시간들은 두꺼운 유리볼 속에 봉인된 채 그대로인데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이 곁에 없을 때 혹은 떠나보내야 할 때를 말한다. 그 시간들 앞에서 자신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겠고, 온몸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겨우 통과해내는 사람들이 있겠다. 작가는 무엇이 맞고 틀리냐를 따지지는 않는다. 단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떤 어른이 되는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마음에 던질 뿐이다.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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