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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Oct 07. 2016

과거의 편견에 고마워지는 순간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더 많은 편견 모으기

다른 선배들은 나를 귀한 새내기로 대접해줬지만 미진 선배만은 예외였다. 선배는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내가 동아리방에 들어가면 안녕, 다음에 보자. 같은 말도 없이 가방을 싸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길을 걷다 마주쳐서 인사를 건네면 굳은 얼굴로 가벼운 목례만 하고 나를 피하듯이 걸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선배의 그런 행동이 그저 낯가림 심하고 말주변 없는 사람의 최선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 최은영 단편집, 《쇼코의 미소》 190p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에 내가 가진 기준을 들이댄다. 그리곤 쉽게 해버린다. '저 사람은 나와는 친해지기 어렵겠다' 혹은 '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같은 생각들을.


그런 생각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치우친 생각'이고 나는 줄곧 편견을 없애야 해! 라는 강박적인 다짐들을 되뇌며 살아왔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나의 성향과 나의 많은 편견들의 인과관계 따위를 분석하며 어쨌든 난 편견이 참 많은 사람이라며 자책하기도 했었다.


최은영의 단편집《쇼코의 미소》에 실린 단편,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진 선배는 주인공 소은이 후에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는 선배이지만,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회고하는 첫인상과 그녀가 가졌던 오해를 고백하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사실 편견이라는 건 우리가 누군가를 다시, 그리고 깊이 보기 위한 첫번째 단계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것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를 깊이 알기 전에 가졌던 생각들이야 말로 나의 오해의 시간들을 반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얀 도화지같은 사람이 될 바에는, 너무 다양해 경계조차 보이지 않는 많은 색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게다가 어쩌면 '편견'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는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버린 얼룩 따위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 온 나만의 기준이다. 그 편견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감히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기준복잡하고 다층적일수록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타인을 단순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린 조금 더 건강한 편견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좋은 것들을 읽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순간들로 편견을 쌓는 일은 나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될 수 있다.


편견이 많았던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게 되는 날,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었다. 혹 편견이 많아 자책하는 이들이 있다면, 자책하며 우울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편견들을 수집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건강하게 뛰노는 다양한 편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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