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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r 31. 2018

혜원의 정성스러운 자연스러움

<리틀 포레스트>와 '브이로그'의 공통점


얼마 전부턴가 유튜브 콘텐츠 중에 '브이로그'라는 콘텐츠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나는 브이로그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콘텐츠들의 진짜 재미나 매력을 잘 몰랐던 사람이었다. 영상(Video)과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생긴 신조어라는 브이로그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상을 영상으로 들여다본다고? 이렇게 지루하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더랬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어차피 이것도 꾸며낸 거잖아 싶은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콘텐츠화하는 일상이라는 것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영상을 더 보다 보니 그건 어느 분야든 입문자가 흔히 가질 수 있는 편견 탓으로 생겼던 거부감이었다. 브이로그의 스펙트럼도 그랬다. 누군가는 화려하게 잘 꾸며진 일상을 업로드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집에만 있는 집순이의 일상을 찍기도 했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갈 수 있을 일상도 정성껏 편집한 영상들에는 왜인지 모르게 눈이 갔다. 누군가 볼 것을 염두하고 편집한 것이지만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어느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글'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보려고 일기장에 써 둔 글조차 최소한 미래의 나라는 독자를 염두하고 쓰는 글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일기장도 아니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혹은 브런치에 써놓는 글이라면 무조건 미지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공한 후 나오는 결과물이다. 아무 생각이나 써내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무언가를 고민하고 정리해서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다는 건, 무신경하거나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들일 수 있는 만큼의 노력 혹은 그 이상의 애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정말로 소중하게 다뤘을 때 생겨나는 분위기 같은 것이다. 애정이 깃든 그 무언가가 내뿜는 매력인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 2017

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를 보았다. 영화에서 혜원이 내내 보여주고 있는 어여쁜 일상들은 참 정성스럽고,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누군가는 집 주방에서 가쓰오부시를 꺼내고, 크림 브륄레를 만드는 일상의 비현실성에 웃음이 나왔다고도 했지만 나는 그런 정성의 순간들이 무엇보다 좋았다. 혼자 밥 한 끼를 먹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혜원의 삶에 중요한 순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농사를 짓고 제철에 더 맛있는 재료들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각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소한 정성들을 보고 단지 허세라던가, (비하하는 말로 자주 쓰이곤 하는) 특유의 오그라드는 SNS감성이라는 표현들로 단정하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일상의 모든 작은 구석들에 조차도 공수를 최소화하고, 가성비만 생각한다면 감성과 취향마저 가난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연스럽다는 것은 아무렇다는 말의 동의어가 아니다.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 같은 것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혜원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 몇몇 브이로그가 보여주는 잔잔한 일상들에서 동시에 그런 것들을 느꼈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고, 내가 무언가에 들이고 있는 정성이나 시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들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다시 위로를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건 요즘 쓰고 있는 '느빌의 책방'콘텐츠들이었다.



나는 누군가 느빌의 책방 콘텐츠를 보면서 자연스럽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움이 아무렇게나 막. 어쩌다 휘갈겼는 데 운 좋게 대박 나버린. 그런 느낌은 아니었으면 바란다. 나의 콘텐츠도 그렇고, 적어도 내가 알고 보아온 느빌의 책방 에디터들은 자연스럽게 정돈된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오래 고민하며 마감하는 이들이니까 말이다.


어떤 유의미한 결과들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에 들이고 있는 정성과 공들이 미지의 독자에 닿을 때 만들어지는 위로의 힘은 크므로. 만약 미지의 독자가 없더라도, 결국에는 그 미지의 독자가 우리가 되고 내가 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브이로그처럼 혜원의 한 끼처럼.

이번 주말도 정성스럽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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