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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Apr 12. 2017

나를 돌보는 시간의 쓸모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다시 나를 돌보는 일

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을 반복적으로 느낀다.

취업을 준비하며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나,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든 외부적인 요인부터 찾고 싶었던지 지난 시간들에 배신감이 들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요!"

"스펙보다는 나만의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겐 맞고 누군가에겐 틀릴법한, 무책임한 조언들만이 주위에 가득했었던 것이다.

막연한 조언들 속에서 키워온 막연한 생각은 바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게 정말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에 발을 조금씩 들여놓다 보니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공포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 취미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지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이윤과 쓸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것은 더 이상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이 고민은 더 해봐야겠고, 내가 고민한다 한들 직접 겪어보기 전엔 모를 일인 듯 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우습게도 점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도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엄살쟁이가 따로 없다 싶긴 하지만 이미 예상되는 반복되는 시나리오와, 그리고 실제로 만난 그 반복이 나를 점점 우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포장해 본 나조차 계속해서 거절당하고, 포장지가 문제인가 리본이 문제인가 선물 자체가 문제인가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고, 또다시 포장하고...'의 반복과 반복.


그 허탈함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머리가 자주 지끈거렸고, 심각한 표정만 짓고 다녔다. 

그러다 우울이 바닥을 치고 탁,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다. 

바닥에 들러붙은 우울한 감정을 다시금 끌어올려 주었던. 


그때 무얼 했었지 생각해본다.

나는 그때

나를 좀 더 보살피는 사소한 일들을 했다.

예컨대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스트레스받으면 식욕이 떨어지고, 자극적인 음식에만 손이 가서 매운 분식을 고르는 나를 잠깐 생각하게 만든다. 몸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자며 덜 자극적이고 더 손이 가는 음식을 손수 준비하는 일. 

또, 바쁘다고 외면했던 일들을 해본다. 지금 '당장에는' 쓸모가 없을 법한 일들로만 골라서. 세계문학을 읽고 친구들이랑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 강아지와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것과 같은.


생각보다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사소한 일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건 생각처럼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쫓기고 바빠서 외면하게 되더라도

나를 돌보아 주는 일들을 하는 것으로 내 세계가 유지된다.

그렇게 유지된 나의 세계가 결국엔 천천히 길을 비춰주진 않을까.


신발에 발을 구겨 넣으면서 가방도 들고 문도 열곤 하는 성격 급한 나지만,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간다 한들 '나'를 놓고 갈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해야지.

천천히 심호흡하고, 그렇게 나아가자.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48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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