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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r 29. 2017

청량한 아이보리색의 아테네

덤으로 얻은 아테네에서의 꽉 찬 하루

2017.1.14-2.9

*런던-파리-리스본-세비야-바르셀로나-마드리드-톨레도-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 푸른색의 아테네 국기가 펄럭인다

맨 마지막 도시로 굳이 아테네를 고른 이유는, 산토리니 때문이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까지만 해도 겨울이어도 산토리니는 꼭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보니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비수기에 산토리니를 가려면 교통편도 불편할뿐더러 여는 식당이나 숙박시설을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을 잘 맞추면 겨울 산토리니행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나 금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던 여행자였기에 산토리니를 포기하고 여유롭게 아테네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집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주택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른 새벽 비가 왔는지 거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비 온 뒤 특유의 맑은 느낌이 가득했다. 촉촉하고 맑은 공기, 아이보리색 골목들을 걸으며 겨울이었지만 지중해성 기후 특유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도시가 가장 사랑하는 색은 단연 아이보리색이었다. 파스텔 톤이 돋보이는 주택들은 산토리니의 파랗고 하얀 벽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에선 어디 있어도 고개만 들면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기 때문에, 마음 놓고 골목들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어쨌든 파르테논 신전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골목들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한적한 골목에서 즐기는 조용한 산책의 시간들은 아테네에 더 머무르는 행운을 실감하게 했다.


아테네 고양이들의 놀이터는 무려 신전

길가엔 고양이나 강아지도 많았다. 한국과는 달리 고양이들은 사람을 보아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겁낼까 봐 조심히 다가가자 기지개를 쭉 켜며 나에게 털을 비비던 예쁜 밤색 얼룩 고양이. 가까이 가서 보니 편히 앉아 있던 곳은 시내 전경이 잘 보이는 명당이었다. 나에게 애교를 부리고는 쿨하게 자리를 옮겨주어서 고양이가 앉아 있던 곳에서 한참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르바를 닮은 주인 할아버지와 흥겨운 얘기를 나눴던 조르바 기념품 샵

그리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을 읽으면 누구나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게 될 터이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시는 소설이기도 하다. 나도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맨 마지막 장에는 매번 완독한 날짜가 1년에 한 번 꼴로 적혀 있어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래서 아빠를 사드릴 선물은 조르바와 관련된 걸 사야지 하던 참에, 딱 "ZORBA"라고 크게 쓰여 있는 기념품 샵을 발견한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호탕하게 인사하며 무엇이든 다 구경하라고 했다. 조르바 영화 OST가 흘러나오는 작은 가게는 영화부터 책, 음악 앨범까지 온갖 조르바와 연관된 것들이 있었다. 조르바를 좋아한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반갑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기 시작했다. 어떻게 조르바를 아냐는 질문에 책으로 읽었다고 하니까 퍼펙트하다고, 그렇지만 영화는 수퍼 퍼펙트! 라고 영화 음악을 소개해주셨다. 오스카상도 수상했었다며, 오스카상 트로피의 모습을 따라 하며 껄껄 웃으셨던 아저씨. 다음엔 여름에 와서 조르바처럼 작은 섬들도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그러게요 아저씨. 꼭 다시 와서 예쁜 섬들에도 가보고 싶어요. 수다쟁이 아테네 조르바 덕후 아저씨로부터 한국 조르바 덕후 아저씨를 위한 작은 파두(Fado)를 기분 좋게 구입할 수 있었다.


신기한 신발을 신고 있었던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의 근위병

비록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의 목적과는 조금 달라진 여행이었지만, 아테네를 여유롭게 둘러보았던 시간 덕분에 그리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가지 못했던 곳들은 조금의 아쉬움까지 더해져서 더 좋은 때에, 더 소중한 마음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청량한 아이보리색의 도시, 아테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어둠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이 조용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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