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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Oct 02. 2018

쓴다고 했던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래서 언제 쓴다고?


잘 쓰고 싶은 마음과 자괴감을 오가며 생긴 매거진

회사에서 나의 직무는 콘텐츠 에디터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글을 쓰고 마감하는 일이다. 게다가 일적인 글 말고도, 친구들과 하는 외부 프로젝트라던가 개인적인 글들도 자주 쓰려 노력하고 있는 나는 사실 회사 밖에서도 쓰는 사람이다. 


그럼 글 쓰는 게 업이고 일상이니 글을 좀 편하고 빠르게 잘 쓰려나? 하는 생각이 혹여나 잠시라도 드셨다면, 그건 죄송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실은 깨끗하고 하얀 창을 바라보는 일이 매일매일 새롭고 짜릿하게 두렵다. 글을 쓰려고 하면 가끔은 이상할 정도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잘 쓰는 사람 세상에 왜 이렇게 많아. 내가 쓴 건 뭐지 쓰레기인가 흑역사인가 그럼 역시 그냥 넣어둬야 하는 것 아닐까. 대체 뭘 쓰고 싶은 거지 왜 쓰고 싶은 거지 그냥 그만 쓰자 안쓸래...하핫 근데 마감이 언제더라?' 


사서 하는 생고생은 자괴감을 낳고 결국 마감은 밀리고 밀려 발등에 불 떨어진 순간에야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이건 나름 괜찮은 건강한 종류의 자괴감인 경우다. 그래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이기 때문. 


오히려 더 큰 자괴감은 회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대행사의 특성상 타겟과 광고주를 염두하며 쓰거나 기획하는 것이 '일'이지만, 종종 갑갑하고 쓰기 싫을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일은 일이니까. 오늘도 하얀 워드 창을 채워간다. 그런 일들에 내내 체력과 정신이 소모되고 나면,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 했던 사람인지도 종종 잊게 된다. 퇴근 후엔 지치고 하루 종일 썼으니까 쉴 때까지 뭘 쓰는 일은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이 아닌 글들을 계속 쓰고 싶었고, 혼자서는 자꾸 게을러지고 미루게 되는 내게 약간의 의무감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회사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일단 무엇이든 쓰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했다. 

주제나 분량, 문체에 있어 평소보다 더 자유로운 글들을.

그렇게 만들어진 매거진이 바로 <쓴다고 했던 글 썼나요>이다. 



쓴다고 했던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럼 대체 왜 쓴다고 했던 글 쓰는 게 중요할까? 일단은 내가 생각하는 이유들을 정리해보며 앞으로 나 또한 이 이유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3가지를 꼽아 보았다. 


1. 쓰지 않은 생각들은 쉽게 사라진다

쓰고 싶은 마음은 일상에서 꽤나 다양한 결로 다가온다. 오늘의 가장 웃겼던 일, 유독 싫었던 일, 우울했던 마음, 지나간 순간들, 기대되는 것들, 번뜩였던 아이디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다. 글쎄 아무 생각도 안 드는 하루를 보냈다고? 그건 그 자체로 글감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잠깐잠깐 들었던 생각들을 글감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익숙지 않아 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써서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휘발되어 사라지고 만다. 조금 부끄럽지만 과거에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이야기들이라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는 생각. 한 30대 중반엔 대작을 집필할 것이고 엄청난 결과물이 나타날 거야! 늦게 써도 괜찮아 하는 생각. (...?)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글감이 있어도 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점점 발전되고 좋아지면 좋아질지언정, 쓰지 않고 묵혀둔다고 더 좋아질 리 없다.


2. 쓴다는 생각은 실제로 쓰는 것이 아니다

간혹 글을 쓰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 혹은 글감만을 메모해놓는 것은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시작이 반 이랬는데 이미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먹은 것 없이 배부른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러나 쓴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쓰는 것이 아니다. 시작은 쓰는 행위, 거기서부터이다. 첫 줄이라도, 제목이라도, 목차든 얼개든 무엇이든 틀을 잡아가는 행위에서부터 실제로 쓰는 것이 시작된다. 


게다가 자꾸 생각과 말만 앞서고 실천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누구에게 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다양한 핑계들을 말해보고 싶겠지만,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자괴감으로 무너지고 우울해지기 싫다면, 쓰겠다는 생각 속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일단 어떤 글이든 완성해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실제 마감에서 오는 행복은 '쓴다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달콤하다.


3.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남기는 건, 생각보다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 일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말이다.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일이나 여행을 떠나는 일과 같은 일들.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은 정말 소중하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흘러 닿는 가장 마지막 곳엔 글 쓰기가 있다. 거기서 느낀 일들을 기록해 두는 것, 그래서 언제든 꺼내 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시절을 보냈는지를 더 생생하게 추억하는 일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그것이 내겐 글쓰기이고 그래서 쓴다고 했던 글은 미루지 말고 꼭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여기서 '글'은 다른 것들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려 했던 취미일 수도 있고, 만들려고 했던 요리일 수도 있고, 그리려고 했던 그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무언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하는 것보다도, 무엇이 되는 것보다도, 그저 하고 싶다고 말한 일들을 하고 있는 상태. 그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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