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ookhee Oct 12. 2018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것

아빠 딸이 보내는 한 끼의 마음

“아빠 요즘 발치하셔 가지고 치료 때문에, 아무것도 못 드시잖아. 국물만 드실 수 있으실 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언니의 말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부모님께선 칠순이 넘으셨다. 나는 꽤 늦둥이, 아니 늦둥이인 셈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시계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무척 빠르게 갔다. 학생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방학 때, 지금은 명절에나 잠깐 만나는 엄마, 아빠는 뵐 때마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곱절로 늙어 보였다. 밤새 하얗게 눈이 내린 듯 세어버린 머리카락, 깊어진 주름, 조금만 걸어도 땀을 흠씬 흘리며 고단해하는 아빠와 엄마를 마주하는 것은 쓰리고 속상한 일이었다. 때로는 고향에 잘 내려오지 않으려고도 했었다. 고향에 자주 내려갈 때면 부모님의 늙어감과 시간의 흐름이 뼈아프게 느껴지니까. 마주하지 않으면 마치 시간이 거기에 멈추어 있을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철없는 나는 못 본 체했다.


가위질 하는 아빠, 과일을 가지고 들어오는 엄마.


‘아빠는 이가 시원찮아가꼬, 니가 보내 준 포도는 마나님이 믹서기에 사악 갈아줘가꼬 훌- 마셨다. 포도 참 맛있데.’라고 하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몰랐다. 


아니. 아빠는 이가 불편하다고 분명 말씀하셨는데, 그때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빠가 최근 잇몸이 자주 부었다는 것을 몰랐다. 부은 잇몸을 내버려두고, 참고 또 참아서 결국 부은 잇몸에 틀니가 맞게 되지 않은 것을 몰랐다. 그래서 치료 때문에 틀니 없이 국물만 겨우 드실 수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항상 장난치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아니다. 역시 내가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것이겠지. 너무 속상했다. 당장 고향에 내려갈 수도 없고, 내려간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간편식, 유동식 따위를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참 못나보였다. 쇼핑몰 몇 군데를 한참 들락날락하다가, 인터넷 반찬 가게에서 후기가 괜찮아 보이는 국, 찌개와 죽, 파우치에 든 간편 죽 따위를 주문했다.

 

“아빠. 집으로 택배 갈 건데, 식품이니까 받으면 바로 냉동실 넣으시고 드세요.”

“뭘 자꾸 사보내노. 됐다. 보내지 마라. 니 살기도 빠듯할 텐데.”

"하루 네 끼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맨날 괜찮다고 하시지. 아빠는 항상 그런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하루 네 끼를 먹는다니, 나는 마냥 태평하게 걱정 없이 산다느니(틀린 말은 아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택배 오면 그냥 두지 마시고 얼른 뜯어서, 맛있게 드시면 된다고 당부와 함께. 


사진) 엄마가 정성껏 끓여주신 미역국과 찰밥이다.


다가온 추석 명절. 고향에 내려가니 엄마는 ‘니가 보내준 국이 참말 맛있었다.’며 아빠가 매 끼니마다 밥그릇을 싹싹 비우셨다고 얘기해 주셨다. 무슨 국은 어땠고, 무슨 찌개도 어쩜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하시는 두 분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행이네. 그래도 그렇게라도 식사를 하실 수 있어서.


“개중에 맛없던 거 있었으면 얘기해주세요. 담에 안 시키게.”

이런 질문은 물어보나 마나다.

“아이고 야야, 그런 거 없다. 다 맛있게 잘 뭇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맛없는데 담에 내가 그거 많이 시키면 어떡해요. 뭐가 제일 별로였는데요?”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가다 결국 두 분은 입을 떼셨다.

“아욱.. 아욱 드간거.. 그기 쪼매 그래. 아부지 잘 안 드시대.”

“그래… 아욱국 그기 쪼매 쫌 글트라.”



귀여운 엄마. 귀여운 아빠. 국물밖에 드시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매일 국을 끓여야 해 난처했을 엄마와 식당이든 집에서든 먹을 만한 것을 찾기가 힘드셨던 아빠가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매달 내가 할 수 있는 몫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냉장고가 허전해질 때 즈음, 맛있는 음식들로 냉장고를 가득 채워드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쓴다고 했던 글을 써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