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것

아빠 딸이 보내는 한 끼의 마음

by sooookhee

“아빠 요즘 발치하셔 가지고 치료 때문에, 아무것도 못 드시잖아. 국물만 드실 수 있으실 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언니의 말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부모님께선 칠순이 넘으셨다. 나는 꽤 늦둥이, 아니 늦둥이인 셈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시계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무척 빠르게 갔다. 학생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방학 때, 지금은 명절에나 잠깐 만나는 엄마, 아빠는 뵐 때마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곱절로 늙어 보였다. 밤새 하얗게 눈이 내린 듯 세어버린 머리카락, 깊어진 주름, 조금만 걸어도 땀을 흠씬 흘리며 고단해하는 아빠와 엄마를 마주하는 것은 쓰리고 속상한 일이었다. 때로는 고향에 잘 내려오지 않으려고도 했었다. 고향에 자주 내려갈 때면 부모님의 늙어감과 시간의 흐름이 뼈아프게 느껴지니까. 마주하지 않으면 마치 시간이 거기에 멈추어 있을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철없는 나는 못 본 체했다.


IMG_9304.jpg 가위질 하는 아빠, 과일을 가지고 들어오는 엄마.


‘아빠는 이가 시원찮아가꼬, 니가 보내 준 포도는 마나님이 믹서기에 사악 갈아줘가꼬 훌- 마셨다. 포도 참 맛있데.’라고 하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몰랐다.


아니. 아빠는 이가 불편하다고 분명 말씀하셨는데, 그때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빠가 최근 잇몸이 자주 부었다는 것을 몰랐다. 부은 잇몸을 내버려두고, 참고 또 참아서 결국 부은 잇몸에 틀니가 맞게 되지 않은 것을 몰랐다. 그래서 치료 때문에 틀니 없이 국물만 겨우 드실 수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항상 장난치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아니다. 역시 내가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것이겠지. 너무 속상했다. 당장 고향에 내려갈 수도 없고, 내려간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간편식, 유동식 따위를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참 못나보였다. 쇼핑몰 몇 군데를 한참 들락날락하다가, 인터넷 반찬 가게에서 후기가 괜찮아 보이는 국, 찌개와 죽, 파우치에 든 간편 죽 따위를 주문했다.


“아빠. 집으로 택배 갈 건데, 식품이니까 받으면 바로 냉동실 넣으시고 드세요.”

“뭘 자꾸 사보내노. 됐다. 보내지 마라. 니 살기도 빠듯할 텐데.”

"하루 네 끼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맨날 괜찮다고 하시지. 아빠는 항상 그런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하루 네 끼를 먹는다니, 나는 마냥 태평하게 걱정 없이 산다느니(틀린 말은 아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택배 오면 그냥 두지 마시고 얼른 뜯어서, 맛있게 드시면 된다고 당부와 함께.


IMG_9301.jpg 사진) 엄마가 정성껏 끓여주신 미역국과 찰밥이다.


다가온 추석 명절. 고향에 내려가니 엄마는 ‘니가 보내준 국이 참말 맛있었다.’며 아빠가 매 끼니마다 밥그릇을 싹싹 비우셨다고 얘기해 주셨다. 무슨 국은 어땠고, 무슨 찌개도 어쩜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하시는 두 분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행이네. 그래도 그렇게라도 식사를 하실 수 있어서.


“개중에 맛없던 거 있었으면 얘기해주세요. 담에 안 시키게.”

이런 질문은 물어보나 마나다.

“아이고 야야, 그런 거 없다. 다 맛있게 잘 뭇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맛없는데 담에 내가 그거 많이 시키면 어떡해요. 뭐가 제일 별로였는데요?”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가다 결국 두 분은 입을 떼셨다.

“아욱.. 아욱 드간거.. 그기 쪼매 그래. 아부지 잘 안 드시대.”

“그래… 아욱국 그기 쪼매 쫌 글트라.”



귀여운 엄마. 귀여운 아빠. 국물밖에 드시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매일 국을 끓여야 해 난처했을 엄마와 식당이든 집에서든 먹을 만한 것을 찾기가 힘드셨던 아빠가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매달 내가 할 수 있는 몫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냉장고가 허전해질 때 즈음, 맛있는 음식들로 냉장고를 가득 채워드려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쓴다고 했던 글을 써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