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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Oct 16. 2018

"대충 살자"적 태도가 필요할 때

중요한 건 '대충'보다 뒤에 있는 말 '살자' 아닐까?


우리 대충 살자...

최근 SNS에서 폭발적으로 활용되고 계속 패러디되던 짤 시리즈가 있다. 아마 한번쯤은 보셨을 '대충 살자'시리즈가 그것. 대충 살자를 처음 접한 건 헤드셋을 귀가 아닌 관자놀이에 끼고 있는 아서 짤이었다. 아니 이런 예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이 짤의 포인트는 아마 집중하고 있어 보이는 아서의 표정과 당시엔 뭐가 문제였을지 몰랐을 그림의 뻔뻔함(?), 그리고 그걸 '대충'이라는 워딩으로 풀어낸 첫 게시자의 센스이다. 


원작 짤 이후 많은 이들은 모르고 지나쳤던 수많은 대충적 모먼트를 찾아냈다. 그에 따라 소환된 이들도 스펙트럼도 아주 다양했다. 보다시피 베토벤에서부터 가상 캐릭터, 현실 인물들까지. 어쩜 그리 감쪽같이 잘 어울리는 상황들이 많았는지! 찰떡같은 패러디들이 물 밀듯 올라왔다. 지금만 해도 조금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페북 피드에선 '대충 살자' 카피가 넘쳐났다. '머쓱;;;타드' 이후 약간은 심심하던 피드의 자리를 메꿔 준 시리즈였달까.



아니! 대충은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야!

ⓒ jtbc 아는형님

그렇게 한참 대충 살자의 인기가 정점일 무렵, 갑자기 분위기는 유노윤호로 돌변했다. 알고 보니 이미 지난해 10월 아는 형님에 출연한 유노윤호는 남다른 열정과 텐션을 자랑하며 '대충'과 관련한 명언을 남긴 바 있었다. 혼자 살면서도 매일 아침 동방신기 콘서트 하이라이트를 온 힘 다해 연습하는 사람,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 당신 대체. 그러자 이 '대충 살자' 시리즈는 다시 유노윤호처럼 '열심히 살자' 시리즈로 역 패러디되었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 자처해서 유노윤호에 빙의하고 싶어 했다. 실제로 약간 효과가 있기도 했는데, 월요일 아침이나 회사에서 싫은 일 해야할 때 속으로 '나는 지치지 않는 유노윤호다'라고 생각하면 잠시지만 열정맨이 되기도 했다.


 ⓒ카카오 이모티콘 띵동


그런데. 아무리 빙의해도 유노윤호 같은 텐션을 유지할 수 없었던 나는 '열심히 살자'와 '대충 살자'의 극단을 오락가락하며 그 오락가락함으로 인해 또다시 체력이 고갈되고야 마는.. 그러니까 대충도 열심히도 살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는 그런 병에 걸리고 말았다. 


텐션이 올랐을 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리하여 "대충은 없어! 절대 짜치지 않을 거야! 완벽하게!" 같은 마음들이 가득 찼다. 대충이라는 해로운 벌레의 살충제, 바로 열정이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가 생각한 '대충'의 반대는 '완벽히'였고, 그래서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는 시작하지도 않으려 하는 태도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렇게 되니 또다시 무기력해지고 '그래 인생 뭐 있냐 대충 살자...'가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 진짜 '대충'에 무게가 실려 무기력을 애인인 양 껴안고는 괜찮아 뭐 어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것이었다. 무기력한 내 모습조차 무기력하게 바라보면서 점점 더 텐션은 바닥을 쳤다. 이렇게 내 게으름에서 기인한 '대충 살자'에서는 자기혐오와 피로감을 동시에 느꼈다. 하다 하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땐 다시 바로 윗 문단의 첫 줄의 상황으로. 그게 반복 또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진짜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 찾아왔는데 나의 게으름이 아닌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최소한의 해야 할 일만을 하고 그 또한 버거운 시기.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는 한번쯤 찾아오게 될 것이고 감정적인 문제일 수도 신체적인 아픔일 수도,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때는 정말로 '대충 살자'적인 태도가 중요했고 꼭 필요했다. 여기서 강조가 되어야 할 건 '살자'였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해야 할 것들밖에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 땐, 그렇게라도 하면서 기운 내고 버텨야 한다는 말 같았으니까. 그건 내게도 자주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대충이어도 어찌 저찌 간신히 힘을 쥐어 짜내 살아낸 오늘 하루를 응원해주는 그 마음은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이 오도록 해주니까. 



중요한 건 대충 다음 말 '살자'


매일 출근길부터 서로의 아침 안부를 살피고 '집에 가고 싶어' '배고파' 같은 실없는 말부터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들까지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직딩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있다. 우리는 종종 글쓰기 아이디어나 콘텐츠 기획 래퍼런스들도 공유하곤 하는데, 오늘도 그러던 중 요즘 굉장히 퀄리티 높은 콘텐츠들을 쏟아내는 한 매체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매체의 퀄리티 높은 콘텐츠들은 어디서 그렇게 잘 나올까 싶을 정도였는데 몇몇 콘텐츠들을 보다가 의외의 포인트를 발견했다. 연재할 것처럼 프롤로그를 올려놓았지만, 실제로 2화가 나오지 않은 것. 초창기의 것이긴 하지만 지금의 것과는 확연이 다른 퀄리티 차이들이 보였다. (물론 이것도 그 당시에는 높은 퀄리티였을 것도 감안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오히려 그 매체에 대한 신뢰였다. 태어날 때부터 잘했던 것 같았는데, 이렇게 꾸준히 하면서 업그레이드시킨 거구나. 어쩌면 지금의 퀄 높은 기획 하나가 있기까지 수없이 시도하고 사라진 기획들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대충 '하자' !

그런 것들을 보며 어쩌면 내게도 필요한 건 대충 살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나 대충 같은 부사는 차치하고, 일단은 '사는 것' 또는 '하는 것' 말이다. 완벽하게 해낼 순간을 내내 기다리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해내면서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 있으니까.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아이디어가 조금 막연해 보이고 될까? 싶더라도, 일단은 대충이라도 해보자. 그러면 어떻게든 우리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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