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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Nov 07. 2018

지금의 너를 온전히 알고 싶은 마음

오래된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너에게

♬ 오늘의 BGM은 우주히피 <우리의 저녁>입니다.



윤을 알게 된 건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의 윤이는 지금의 윤이 아니었다. 이름을 바꾸기 전의 윤이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더 근본적이고 자연스러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8년의 시간이 지났고 지금의 너는 과거의 너와는 다른 너였다.


'눈 깜짝할 만큼 빠른'이라는 빤하고 진부한 표현들을 쓰기 싫으면서도, 시간이란 건 결국 오래된 수식어구와 어울리는 편이다. 그래서 8년 동안의 시간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 간단하게 요약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었고, 없었고의 차이로만 요약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너는 나를 먼저 알아봐 주었고, 고맙게도 먼저 나에게 마음을 많이 내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 긴 시간 동안을 우린 애매하고 먼 사이로 지내왔다. 처음 스무 살 무렵엔 그런 마음들을 모른척하고 친하게 지내며 가까웠다가, 아무래도 불편해진 이후 몇 년간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연락조차 할 수 없는 관계의 공백기를 거쳤다가, 다시 아주 뜨문 뜨문 연락을 하여 만나기도 하다가, 최근의 몇 달은 다시 자주 연락도 하고 만나다가, 이제야 비로소 서로 마주 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런 일들이지만, 이 모든 단순한 표현들로 담기지 않을 수많은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서로만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너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시간들일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상대방이 지나온 시간들을 내가 헤아릴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쉽게 예측하고 짐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게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까 그건 아무리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이해되는 종류의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은 간혹 돌출되어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매번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예컨대 나의 지금의 말에서 굳이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내는 네가 안타깝고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무심한 나와 상처 입은 너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느낀다. 그런가 하면 가끔은 정말 바보 같은 마음이지만 그 시간들에 서로가 없었다는 것에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한다. 우리가 예전부터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무의미한 가정들이 가득 찬다. 내가 그런 심술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염치없게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게도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를 스치고 간 시간들 속에서 나만의 방식이나 기준,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고집과 편견 같은 것들이 생겨 버린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애써 지나 지금의 너와 내가 여기 서 있다. 각자 보낸 시간들이 이제야 가까워지면서 서로에게로 침입하고 있다. 어느 날엔 여전한 너의 마음을 느끼며 벅찬 고마움과 행복을 느끼지만, 어느 날엔 이렇게나 낯선 나와 너의 간극을 멍하니 바라보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제야 마주 보기 시작했다는 증거, 낯설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서로를 찬찬히 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시작했더라면, 하는 무의미한 가정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이미 우리는 오래전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고 너와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과거의 엔딩이나 미래의 클라이맥스만을 상상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의 너와 나를 온전히 보고 싶다. 매 순간이 예쁘진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다. 서로의 조금 다른 모습들을 맞춰가고 늦된 이해들을 조율하면서 매 순간 잔잔한 음악처럼, 끊이지 않고 그렇게 곁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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