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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Nov 19. 2018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치열해서 더 두려운 일상의 불안함을 함께 견디기

♬오늘의 BGM은 Shoon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입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전날 밤 미리 얼려 둔 샤인 머스캣을 와그작 씹으며 이가 시리지만 너무 달고 맛있어 기분 좋게 시작했던 일요일이었다. 피할 수 없는 고정 스케줄을 지나치며 어쩔 도리 없이 하루의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빼앗긴 기분이 든 건 바로 1시간 정도 지난 후였다.


나의 일요일에는 내가 아직 어쩔 도리 없이 해야 하는 일정(가족과의 일정이나 종교 활동 같은 것들)이 존재했고, 그 스케줄을 지나자 원래 아침에 하루를 생각하며 계획했던 일들은 무기력 앞에 지고 말았다. 눈 뼈 언저리가 지끈거리며 머리도 아프고 으슬 으슬 추워 뜨끈한 마룻바닥에 고대로 누워 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것, 매달리고 있는 것들이 나를 비웃는 느낌이 들었다. 너 이런 거 해서 다 어디에 쓸래? 다 무슨 소용이야? 외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차분히 계획했던 일요일의 정돈된 일정 따위는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은 불안에서 기인했다.


무언가를 위해 지금 나의 시간과 노력을 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불안함. 그건 순수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기쁨을 앗아 갔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 업무 외에 시간에 마냥 쉬지 않고 조금이더라도 내 시간을 내어 굳이 글을 쓰는 일들이나 무언가 기획하고 해보려 하는 것들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고 있음에 의의를 두겠다고 포장했지만 그 안엔 잘하고 싶고 좋은 반응을 얻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존재했다. 치열하게 뭔가를 하는 것도 같은데 아무런 확신이 없으니 생기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자주 지치게 했다. 잘하고 싶으면 더 꾸준하게 뭔가를 쌓아가야 하는데 때때로 그건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공간에서 나 혼자 우스꽝스럽게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 내는 기분이 들게 했다. 몇 명쯤은 앉아 있겠지 생각하면서 무대에 올라 용기 내 할 말 못 할 말 다 했는데, 조명이 켜지니 관객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의 머쓱하고 씁쓸한 외로움 같은 거랄까.


내내 찝찝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 이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녁을 먹고 집 앞 카페로 갔다. 달짝지근한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마감에 맞춰 짧은 글을 하나 쓰고 요새 배우고 있는 캐릭터 그리기를 연습했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남아 일기장 한편에 삐뚤어진 글씨로 속상하다 속상해. 따위의 말들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웅크려 하루치 우울함을 곱씹으면서 깨작대고 있던 내 앞에 하루의 일을 마친 네가 도착했다. 뭐 하고 있었냐고 물어봐 주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거냐며 손을 내밀었다. 두서없이 내 마음을 전했다. 뭐가 불안하고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내일이 월요일이고 다음 주 일정이 정신없을 것 같음에서 비롯하는 일상적 불안함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는 일들의 의미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근원적인 불안함까지. 무섭다고 말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계속 이대로이면 어떡하지? 나 너무 무서워.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은 후 어떻게 하라는 조언이나 내 상태에 대한 판단 대신 너는, 네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가 느끼는 불안함이 나와 어느 부분이 닮았는지. 그리고 네 경우엔 그 불안함 들을 어떤 식으로 극복하려고 하고 있는지.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나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리는 확신이 있는 정답까지 도출해 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다 놓아 버리지 않고 일단은 버티는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우린 비슷한 불안함을 겪으면서 버티고 있다는 것과 그건 생각보다 잘 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나 갑자기 핫도그가 먹고 싶어. 우습게도 한참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니 배가 고파져 왔다. 그래 그래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까? 웃으며 대답하는 너. 배가 고파진 걸 보니 하루 종일 느낀 답답한 불안함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조금 웃음이 나왔다. 우리 옆에 편의점 털러 갈까?


편의점 핫도그와 순살 꼬치를 하나씩 먹고 나서 기대 이상으로 맛있던 신상 하겐다즈까지 먹었다. 치즈맛 핫도그와 크림치즈 모찌 맛의 하겐다즈는 두려웠던 마음을 봉합하는 데에 꽤 효과적이었다. 아마 당연하게도 그렇게 응급처치로 봉합해 둔 마음은 금세 또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무섭다고 외칠 수 있는 것, 그래서 위로받고 위로하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 Shoon,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언젠가 이 노래처럼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나태한 나날들이 오긴 올까.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외치면서도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면 같이 사 먹으러 나가는 것, 함께 앉아서 재밌었다던 예능을 틀어 놓고 같이 웃는 것, 아마 바쁜 주일 테지만 그 다음 주말의 휴식 계획을 미리 세워 보는 것, 그리고 이런 노래를 듣는 것. 나는 이미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새삼 이미 나는 너와 치열하지 않게 나태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버틴 일요일의 저녁들은 쉽게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치열함과 치열하지 않음 그 온도차를 오가면서 불안하고 외로울지언정,

어제와 같은 시간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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