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으면 계속 하고 싶은 게 늘어나
♬오늘의 BGM은 검정 치마 <나랑 아니면>입니다.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어색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 단어를 오래 반복해 되뇌다 보면 일시적으로 단어가 생소하게 보인다는 게슈탈트 붕괴 현상도 있으니까. 짧은 단어가 아니라 더 큼직한 무언가를 생각하다 보면 더더욱 생경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어쩌다가 우리가 만나게 된 걸까? 부터 시작해 어떻게 지금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 걸까? 갑자기 이런 질문들이 퐁퐁 떠오를 때. 너의 시작은 어느 지점이었는지, 그럼 나의 시작은 어느 지점이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미처 알지 못할 어떤 우연의 순간들이 수없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 너와 난 여기 마주 보고 설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거창하게 '어떤 이유로 사랑에 빠졌을까'를 생각하는 건 진작 포기했다. 그 이유는 없어서가 아니라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떤'이라는 질문으로 헤집을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답하기 쉬울 것부터 시작해보아야 한다. 우린 어쩌다가 가까워진 걸까?
원체 낯을 많이 가리고 내향적인 탓에 많은 사람들에게 살갑지 못하단 것은 내 오랜 컴플렉스 중 하나였다. 스무 살 무렵에도 그랬다. 그래서 신입생들의 입학으로 한껏 들떠 있던 캠퍼스에서 실은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약간은 얼어 있는 상태의 쫄보였다. 새로운 모임, 동기 모임, 환영회, 술자리... 내겐 되게 다 어렵고 어색한 일들 투성이었다. 게다가 지금으로선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엔 대학에서 약간의 서열 문화가 있었는데(화석 인증) 그게 또 그렇게 불편하고 미치겠던 거다.
그 와중에 고마운 건 동기들이었다. 나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 친구들을 사귀었던 마지막 순간으로 스무 살을 기억한다. 그땐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어떤 이유로 가까워졌는지에 대해 명료하게 답을 낼 수 있는 관계들이 더 많아지더라. 취향이 비슷해서, 같은 직종에 근무해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져서 등등. 그러니까 그땐 앞에 말한 이런저런 것들이 하나도 맞지 않았을지언정, 단지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학창 시절, 우연히 같은 반이 된 친구들을 사귀듯 말이다.
그렇게 친해진 동기들 가운데엔 너도 있었다. 많이 친해지기 전까진 나와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너는 내가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게 했었고, 내가 어려워했던 것들을 너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는데, 더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알아 갈수록 참 너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빠르게 친해진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노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노래를 듣는 취향도 비슷했고, 음악을 공부했던 것도, 당시에 사진을 배우고 싶어 했던 것도 비슷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비교적 편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너도 꽤나 쫄보였고, 소심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났고 우린 이제 또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한 것들은 여전한 편이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엔 새해를 기념으로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적어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았다.
같이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좋아하는 것의 공통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린 아마 공통지점에서 출발해 각자가 좋아하는 일들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점점 더 넓혀나갈 것이다.
같이 연주를 하고,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고. 어쩔 때는 요리도 해보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도 해 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함께 있으면 하고 싶은 게 늘어나고 같이 있을 때 가능성이 더욱 넓어지는 관계. 늘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관계 중 하나였다.
지난 주말 우리는 데이트를 하다가 만화방을 들렀다. 각자 만화를 골라 놓고도 40분을 만화는 안 읽고 속닥거렸다. 내내 이야기해도 할 이야기가 생기고 시시한 농담에 웃고 떠드느라고.
그리고 그건 어떤 이유로 우리가 가까워졌는지 알 것 같은 분명한 순간이었다.